# 서른여덟, 시집 안 간 둘째 딸 <11화>
얼마 전, 지희는 영화 <세자매>를 보았다. 성격부터 옷 입는 취향에 말투까지 공통점 하나 없는 세 자매의 모습이 딱 지수와 지희, 지민의 모습이었다.
올해 81년 생, '마흔한 살'인 지수는 세 딸 중 첫째이자, 지희의 하나뿐인 언니다. 그리고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딸이자 엄마가 가장 기대한 딸이기도 하다. 아마 이 말엔 가족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아빠와 엄마는 지수를 참 사랑했다. 세 살 어린 지희가 볼 때도 그 사랑이 질투날만큼 너무나 특별했다. 사고 싶은 건 노력하지 않아도 뭐든 쉽게 가질 수 있었고, 그 욕심엔 가격도,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도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님 역시, 돈이 없었다면 빚을 내서라도 지수의 요구를 들어줬을 것이리라. 그 덕(?)에 지수는 싫은 건 죽어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개인주의적인 인간형'으로 자라났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가족보다 친구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지희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그것이 '가출'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언니, 지수의 알 수 없는 반항은 성인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고, 17년 후, 무려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언니가 가족 품으로 돌아온 이유는 바로 뱃속에 아이가 생겼기 때문. 그 아이가 지금 형부와 만나 낳은 언니의 첫 딸이다.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첫째 딸에게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고 한 엄마의 바람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언니, 지수는 자식을 통해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 '엄마'가 됐고, 이제 조금 철든 모습을 보이며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
지희의 하나뿐인 동생인 지민은 올해 87년 생, 서른다섯이다. 무슨 짓을 하든 모든 것이 용서되는 '막내딸', 그게 바로 지민이었다. 덕분에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꾸중을 들어야 했던 연례행사도 지민만은 예외. 오히려 "내 성적표를 아빠가 왜 봐!"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던 아이였다. 특히, 지민은 입을 꾹 닫고 살던 큰 언니, 지수와는 정반대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며 살았다. 좋게 말하면 솔직한 아이, 안 좋게 말하면 본인 속 시원하겠다고 남의 속을 긁는 아이였다. 그 결과,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힘들어했고, 어떻게 말해야 상대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마음 읽는 법을 잘 몰라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몰랐다기 보단 그냥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더 맞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한 아이, 그게 바로 막내, 지민이었다. 그녀의 이런 '이기적인 생각'은 시간이 흐르며 '잘못된 표현'으로 이어졌고, 주변 사람들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들었다. 특히, 엄마를 가장 많이 아프게 했고, 그 사이에 낀 지희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단 하나, 지민이 가족을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시 돋친 말이 진심까지 덮어버릴 정도로 잔인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하나. 세 딸 중 둘째 인 84년 생, 서른여덟 지희다. 지희는 언니처럼 욕심이 많지도 않았고, 동생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지도 않았다. 괜찮지 않은데도 늘 "괜찮다."고 말했고, 사실은 필요한데도 "필요 없다."고 말하며 늘 양보하고 나눠줬다. 그런 지희를 아빠는 '착한 둘째 딸'이라 불렀고, 엄마는 자기 것도 못 챙기는 '답답한 녀석'고 했다. 하지만, 지희는 그게 더 편했다. 큰소리로 싸우는 것보다, 누가 울고 화내는 것보다 조용히 그것도 평화롭게 넘어갈 수만 있다면 바보 같이 다 빼앗겨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린 언니를 대신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동생을 대신해 기꺼이 다 들어주고 맞춰주는 'OK 걸'이 되었다. 그렇게 지희는 점점 '지희'가 아닌 '가족이 원하는 지희'가 되어갔다. 그땐 그게 맞다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문제가 발생했다. 짜증이 눈에 띄게 늘었고, 사소한 일에도 점점 화를 참지 못했다. 아무래도 '착한 연기'를 너무 오래 한 것에 대한 부작용인 듯했다. 가족이 별 뜻 없이 한 말에도 '내가 만만해 보이나?', '내가 호구야?'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생각은 곧 표정과 말투로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착했던' 둘째, 지희는 이제 조금씩 안 착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그저 '지희답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장점만큼 단점이 확실한 지수와 지희, 그리고 지민.
그녀들은 마흔이 넘은 지금, 어중간한 나이가 된 지금, 서른 중반이 된 지금,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 중이다.
"큰 언니가 '방황'했을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우리가 옆에서 힘이 되어줬다면 짧게 끝나지 않았을까?"
"지민이가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건, 그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생각이 깊고 마음이 착한 아이잖아. 안 그래?"
이렇게 <세자매>는 오늘도 '이해'가 안 되면 '공감'이라도 해보려 한다.
가족이니까. 평생 서로 함께 해야 하는 '자매'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