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정리하다 구겨진 명함을 하나 발견했다. 한 때 자주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의 것이었다. 이제는 안부를 물으려 해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 명함 위의 먼지를 털어내야 했다.
출처도 기억나지 않는 명함들을 보면서 케케묵은 관계를 떠올렸다. 돌아보니 수 없이 많은 이름들이 내 삶에 들어오고 나갔다. 그중엔 너무 간절해서 잊고 싶지 않았지만 허무하게 잊혀진 이름이, 무척이나 잊고 싶었지만 지독하게도 남아있는 이름이 있다. 수많은 이름을 만났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으로 남았을까. 잊혀진 이름일까, 남은 이름일까. 기억될 수 있다면 조금은 따뜻한 이름일까. 수많은 명함 더미 속 제일 먼저는 아닐지라도 내 명함을 찾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서랍 속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두었다가 괜스레 삶이 버거운 날에 꺼내볼 수 있는 명함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