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남은 모든 것들에게
나는 타고나기를 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아니, 솔직하지 못하다고 하면 맞을까.
표현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인간관계도 먼지 쌓인 선물상자처럼 쓸쓸해지고 만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는 더 표현하기 위해 '노력'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 정확히 말해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 매 순간 우리의 시간과 관계 앞에 조금 더 진솔한 태도로 임하려 노력하게 된 것은 그들로부터 내가 꾸준히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누군가 나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보냈다거나, 정성껏 선물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평소엔 잘 보이지 않다가, 필요할 때가 돼서 무심코 서랍을 열 면 항상 그 자리를 성실히 지켜주는 손톱깎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보다 나약했던 내가 미처 눈치채 내지 못한 시선들, 양팔 가득 담아내지 못한 선한 마음들, 그 어떤 잣대로도 나의 달음질을 재단하지 않는 믿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 확신했다. 그 성실한 사랑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반드시 고맙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표현의 방법과 시기, 대상은 좀 잡을 수 없었다. 단짝 친구와 신명 나게 수다를 이어나가다가 맥락도 없는 한 마디로 마음을 전하기도 했고, 누군가에겐 아득한 새벽 기운을 빌려 노란색 메시지를 보내고 잠에 들기도 했다. 새삼스러운 아침인사 사이에 슬쩍 응원의 메시지를 끼워넣기도 했으며, 소파에 널브러져 우리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던 날에는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고백하기도 했다. 당신이 내 친구인 게 참 다행이라고. 그 날은 내가 미안했다고. 못난 내 옆에 지금까지 남아줘서 고맙다고. 너를 응원한다고. 사랑한다고. 사전 예고도 그 어떤 질서도 없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잊지 않으려 전하곤 했던 말들은 나의 고백이고 용기였다.
그렇게 어제보다 조금 더 진솔한 태도로 삶에 임하다 보니 내 세상이 비로소 행복해졌다.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 폐휴지를 주으시는 할머니에게 따뜻한 캔커피 하나 정도는 내밀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표현의 힘이었다. 기어코 삼켜야만 했던 말들. 자꾸 속으로만 굽어 들어가던 내 진심. 뱉어내지 못해 오해하고 기다리고 허비했던 숱한 지난날들에게 미안해졌다. 내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줘서 고맙다'라고, '너의 내일을 응원한다'라고 표현하는 당신이길 나는 바란다. 내 곁에 남은 모든 것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