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피디 Feb 09. 2020

내 가방엔 거절하지 못한 마음들이 가득하다.

"야, 너는 무슨 쓰레기 수집하고 다니냐, 가방에 뭐 이렇게 전단지가 많아?"


잠시 내 화장품을 빌려 쓰겠다던 친구가 나의 가방을 가져가더니 놀란 눈치로 말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얼버무렸다. 친구는 나에게 전단지 알바를 하냐며 장난스럽게 놀려댔지만 나는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내 가방 속엔 늘 출처모를 전단지가 가득하다.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전단지. 주인 없는 종이들. 차마 거절하지 못한 마음들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다. 보통은 전단지를 전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부러 받아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많다. 가던 길을 가로막고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전단지는, 정말이지 휙- 하고 최대한 무심하게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그런 깜냥 따위는 내게 없다. 매번 전단지를 받고야 만다. 썩 내키지도 않는 그 종이 쪼가리를 받고 나면, 이 마음과는 상관없이 늘 먼저 마중 나가는 손이 민망스러워 최대한 빨리 가방 안에 구겨 넣는다. 그렇게 거절하지 못한 마음들이 아무렇게나 쌓여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무릎에 올려놓은 가방을 들여다보니 웃음이 났다. 하루 끝 무렵에 떠오르는 후회스러운 마음들이 꼭 가방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전단지를 닮은 것 같았다. 잘 알지 못하는 이의 무례한 발언 앞에서 아무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하호호 웃으며 얼떨결에 넘겨버린 순간들. 상사의 대답이 온전히 납득되지 않았음에도 섣불리 고개를 끄덕여버린 찰나들. 대처하는 법을 몰라 성급히 구겨 넣은 어리숙한 마음들은 꼭 가방 속 전단지를 닮아있었다.


'다음 내리실 역은 광운대 역입니다'


 도착역에 내리자마자 쓰레기통을 찾았다. 가방 속에 구겨진 전단지를 꺼내어 모두 버렸다. 외면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내지 못한 시간들과 함께, 모두 버렸다. 받기 싫은 전단지를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후회되는 순간들이 조금은 줄어들까 생각한다. 그때는 좀 더 내게 솔직한 사람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