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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Feb 11. 2020

미처 숨지 못한 달.

이른 새벽에 뜬 하얀 달은 어린날의 나를 닮았다.


이른 새벽의 출근길이 유난히 허전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불 꺼진 아파트 창문들을 보면 나만 혼자 바삐 사는 것 같아 씁쓸했다. 데워지지 않은 차가운 밤공기가 고스란히 살갗으로 느껴지면 외투를 더욱 동여맨다. 왠지 그런 행위가 더욱 나를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다리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은 어딘엔가 걸려 자꾸만 더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얀 달을 찾았다. 어젯밤 훌쩍 떠올랐다가 미처 숨지 못한 달. 어스름한 하늘 어딘가에 홀로 남은 달을 보면 꼭 그 모습이 나를 닮은 것 같아 자꾸만 보게 된다. 천천히 걸어도 보고 사진도 찍어본다. 그러면 기분이 한결 나았다. 마치 낯을 가리기라도 하듯 확고하지 못한 얼굴로 하늘에 걸린 하얀 달은 특히 어린날의 나를 닮아있었다.


나는 사실 부끄럼이 많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태어났다. (다만 어른이 되면서 '군중 속의 나'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내 지금은 관종에까지 이르렀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 나는 사람이 많은 식당에 가면 엄마에게도 귓속말로 이야기할 만큼 소심한 아이였다. 학창 시절에도 난 늘 짝사랑 중이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혼자 사랑하는 편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자주 혼자 있는 것을 택하던 어린날의 나는. 이른 새벽 홀로 남은 하얀 달과 닮아 있었다.


오늘도 미처 숨지 못한 하얀 달이 떴다. 밤하늘에 뜬 달처럼 밝고 선명하진 않지만 애매하게 떠오른 그 하얀 달이 나는 좋다. 어설프고 밋밋한 그 모습이 어린날의 나를 닮은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이른 새벽에 뜬 하얀 달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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