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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Feb 14. 2020

나는 웃었고 너는 나를 바라봤다.

의심없이 사랑한 순간 

나의 구 남친.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구 남친이 되어버린 남편과 연애를 할 당시였다. 어떤 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바쁘고 정신없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연신 손목의 시계를 힐끔거리며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눈치 없게도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건 바야흐로 하얗고 조그마한 강아지였다. 그때 당시 본가에서도 강아지를 키웠던 나는 그 퐁실퐁실하고 귀여운 털 뭉탱이(?) 앞에서 도저히! 더 이상! 발을 뗄 수 없었다. 


"아악~~~ 귀여워~~~" 


귀여움을 표현했다기엔 다소 과격한 면이 있는 격양된 목소리로 녀석을 향한 반가움을 알렸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작은 생물체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손을 내밀 때마다 부드럽고도 까끌한 녀석의 혀가 내 손등을 핥았다. 간질간질한 혀의 촉감이 닿을 때면 왠지 녀석의 귀여움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깜찍한 녀석과의 조우도 잠시, 뒤통수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우리는 지금 급히 어딘가로 가고 있었으며 시간마저 모자라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얼른 남자 친구를 향해 돌아봤다. 그런데 남자 친구는 예상과 다르게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 자식, 자기도 강아지 좋아하면서 아닌 척 하기는! 남자 친구의 미소에 조금은 안도가 되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기에 급히 일어섰다. 나는 그 작은 생물체에게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얼른 남자 친구의 팔짱을 꼈다. 


"미안, 얼른 가자!"

"다 봤어?"

"응!!!"


남자 친구는 여유로운 미소로 내게 다 봤냐고 물었다. 물론 발걸음은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빨랐지만. 나는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저 강아지 너무 귀엽다. 만두도 애기 땐 저렇게 작았었는데"

"그러게 진짜 귀엽다"

"뭐야 영혼이 없네"

"나 강아지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안 좋아한다고? 내가 너 웃는 거 다 봤어"

"나 너 보고 웃은 건데?" 


남자 친구는 강아지가 귀여워서 웃은 게 아니라 강아지를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웃은 거라고 했다. 그때 당시엔 느끼하다며 얼렁뚱땅 넘겼지만 그 말이 집으로 돌아와서 까지 오래도록 생각이 났다. 


생각해보니 내가 웃고 있을 때마다 우린 늘 눈이 마주쳤다. 내가 자주 가는 귀여운 소품 가게에서도, 함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까르르 웃음이 터질 때에도, 그리고 그날 강아지를 보며 웃고 있을 때에도. 너는 늘 나를 보며 웃었다. 내가 웃을 때 당신이 기쁘다는 것을, 내 기쁨이 그 자체로도 당신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에 나는 깊은 안정감에 사로잡혔다. 


우린 함께라서 더욱 기쁠 일이 많을 것이다. 내 기쁨이 너의 기쁨이고,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테니. 슬픔을 나누는 것보다 기쁨을 진정으로 함께 느껴줄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이라는 흔한 세상 말처럼, 우리는 의심 없이 서로의 기쁨을 기뻐할 것이다. 비로소 깊은 안정감에 사로잡혔던 그 날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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