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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Feb 12. 2020

자취방의 기억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원


잘 아는 동생이 대학원 생활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다. 독립은 처음인 데다가 복잡한 서울은 더더욱이 낯설 동생을 생각하니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서울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염치없이 집들이에 초대해달라고 졸랐다. 집 구경을 핑계로 필요한 물품이나 집에서 먹을 반찬거리를 조금 사다 줄 계획이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동생의 보금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한 칸짜리 원룸엔 아담한 살림들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방 크기도 너무 좁지 않고 딱 좋아 보였다. 내 앉은키보다 조금 더 큰 냉장고엔 간단하게 먹을 간식과 음료, 그리고 오늘을 위해 미리 사다 놓은 것 같아 보이는 딸기 한 팩이 들어있었다.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최소한의 물건들만 산다고 해도 그 양이 꽤 많을 텐데 웬만한 살림 용품은 다 구비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밥도 안 해 먹고 살 줄 알았는데, 야무지게 해 놓고 사네~"


걱정보단 안도에 가까운 내 혼잣말에 동생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요. 웬만한 건 진작 다 주문했죠~

이제 집을 꾸며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봐 둔 커튼이 있는데 같이 봐줄래요 언니? 이거 어때요?"


'인스타 감성'으로 방을 꾸밀 계획이라는 동생은 똑같은 커튼 사진이 잔뜩 도배되어 있는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동생말에 의하면 모두 다른 디자인의 커튼이라고 했지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내 눈엔 다 똑같은 하얀색 커튼이었다. 이게 어떻게 다른 커튼이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는가. 얼마나 벅찬 기쁨이었는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니! 신이 난 동생의 얼굴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이 사진들이 모두 같은 커튼이냐 다른 커튼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방송 현장으로 취업을 나갔던 나에게도 한 칸짜리 자취방이 있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의 손을 벌리지 않고 싶은 마음에 모든 지원을 만류했던 터라 내가 가진 돈은 보증금 300만 원이 전부였다. 스물둘, 그토록 화창한 나이에 나의 고시원 생활이 시작됐다.


보증금 300에 월세 35. 한 사람이 누우면 방안이 가득 찰 만큼 좁았던 내 첫 자취방. 강서구 염창동의 고시원으로 입실하던 그날 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짐은 여행가방 하나에 전부 들어갈 만큼 적었지만, 방에는 짐을 다 풀 공간조차도 마땅치 않았다. 반은 책장에, 반은 꺼내지도 못한 채로 가방 안에 그대로 넣어 침대 밑에 쑤셔 넣었다. 부모님은 막내딸의 첫 자취방에 짐을 옮기러 오셨다가 눈물만 흘리고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가시고 남은 방에 혼자가 되었을 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때 내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 작은 방에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창문은 일반적인 크기의 방 창문이 아니라, 지금의 화장실 창문 정도의 크기였다.) 그때 당시 창문이 있는 고시원은 보기 드물었으며 심지어 창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월세가 5만 원이나 더 비쌌다. 침대에 앉으면 코 앞에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 위로 창문이 나 있었다. 고시원으로 입실한 첫날밤, 침대 위에 앉아 바라보던 작은 유리 너머의 불빛들을 나는 기억한다. 이곳과는 다른 세상 같던 유리 너머의 곳. 고층 오피스텔이 즐비한 풍경을 보며 '언젠간 나도'라고 조용히 말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얼른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시끄러운 음악에 꾹꾹 눌린 억한 감정이 음악사이를 비집고 세어 나올 것 같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노랫말을 소리 내 불렀다. 혼자 살아내야 한다는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이 두서없이 교차하던 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내 자취방 첫날의 기억이다.


나는 그로부터 약 2년을 줄 곧 그곳에서 살았다. 두어 계절이 지나자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월급을 받으면 천원 용품 샵에 가서 꾸밀만한 것들을 사 가지고 와 나름대로 방을 꾸미기도 했다. 모처럼의 시간이 생기면, 가장 친한 친구를 초대해 밤이 새도록 좁은 방에 껴 앉아 선배 험담을 늘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날도 있었다. 주말엔 가끔 공용 부엌에서 밥도 해 먹고, 좋아하는 과자도 방안에 쌓아놨다. 보잘것없는 한 칸짜리 고시원에서 나름의 삶을 살아갔다. 물론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만만치 않다던 방송 조연출의 삶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혹독했기에 나는 자주 그 방 안에서 혼자 울었다. 지방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날 새벽엔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홀로 들어야 했다. 쉽게 지나가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툰 것 투성이었던 날들. 까마득한 미래 앞에서 주저하기 십상이었지만 그럼에도 곧 성큼성큼 해쳐나가던 청춘의 땀냄새와 눈물, 보람이 배어있는 곳. 내 청춘, 사랑스러운 내 청춘이 살다 간 곳. 나의 첫 자취방의 기억은 애증으로 남았다.


동생은 아직도 커튼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너는 이 공간에서 너만의 청춘을 만들어가겠지. 혼자 우는 날도 있을 것이며, 행복한 날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한 걸음,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이게 맞는지 몰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나중이 되어 돌아본 이 곳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겠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이 작은 공간은 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친구이자 부모가 될 것이다. 동생의 자취방에 앉아 오랫동안 홀로 생각했다. 모든 청춘들의 자취방은 바야흐로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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