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토해내는 아픔, 또 다른 이름의 위로
우울보단 울적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날이었다. 노골적인 감정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가슴 한구석이 휑해서 자꾸만 그 사이로 은근한 바람이 부는 날. 걸음을 걷다가 어디라도 앉아서 조금만 쉬다가 걷고 싶은 날. 이런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우울할 때 듣는 음악'
유튜브에서 '우울할 때 듣는 음악'을 찾았다. 많은 사용자들이 익명의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올려놓은 플레이리스트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 남색 하늘에 작은 초승달이 앙증맞게 그려진 썸네일을 선택했다. 애매한 우울엔 역시나 음악만 한 게 없었다. 내 상황과 꼭 맞아 떨어지는 가사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은근히 속이 후련했다. 얼굴도 모르는 작사가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다보면 기분이 한결 나았다. '이런 가사를 쓰다니.' 선물같은 문장을 만날때면 황급히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들리는대로 가사를 옮겨적었다. 음악을 듣고 가사를 옮겨 적는 동안에도 감정의 외줄타기는 이어졌다. 버티거나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나는 곧잘 서있었다. 커다란 위로를 바란것은 아니었으나 담백한 노랫말들은 내게 적당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오자 조금 따분해졌다. 댓글 좀 구경해볼까 싶어 스크롤을 내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렬한 대화의 장을 열고 있었던건지. 게시물 밑으로는 백여개가 넘는 댓글들이 수두룩히 이어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 어떤 누구도 댓글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일제히 그 작은 창 안에 본인의 우울을 토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댓글창은 꼭 아픔을 가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하나의 장 같았다. 그들은 열렬히 본인의 아픔을 고백했다. 그리고 아낌없이 서로 위로했다. 누구도 자기의 우울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타인의 우울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가르치려하지도 않았다. 그 말들은 우회가 없고 솔직했다. 너무나도 솔직해서 처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밀없는 친구에게 속내를 터놓듯 거침이 없었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수험생, 헤어진 연인을 3년 째 잊지 못하는 여자, 모든게 두려운 사회 초년생, 아빠의 시한부 소식을 듣게된 딸, 더 이상 살 이유를 못찾겠다는 청춘.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있는 아픔들은, '동질감'이라는 단 한마디의 위로안에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익명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토해내는 그들의 아픔은 서로 부딪히고 발화하여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bo****
댓글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다 내가 옛날에 했던 생각들이고 지금도 가끔하는 생각들인데 진짜 진짜로 죽을것 같더라도 그래도 지나가긴 하더라... 정말 지나가지 않을것 같았는데 정말 다들 힘내라. 아직 우리는 인생의 반도 안 살았는데 너무 아깝잖아. 진짜 힘내는게 힘든데, 잘 살자 우리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온건 내일의 내가 아팠던 만큼 더 성숙해지더라. 분명 내가 성장하려고 성장통을 너무 아프게 겪는것 같아. 틀어박히지 말고, 나는 우울해질때마다 내가 아는 사람없는 먼데로 일부러 가서 계속 걸었어. 나만의 방법을 끊임없이 찾다보면 매번 별로 안나아진것 같아도 진짜 어느새 이렇게 생각하고 내 또래나 남들보다 더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들어. 나도 아직 진행형이지만 정말 다들 한발한발 나이가 보자
-댓글 중에서-
때로는 익명이란 벽이 누군가에게 거대한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나는 조금 씁쓸했다. 이해 관계가 없는 위로는 앙꼬없는 팥빵이나 단무지 빠진 김밥처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모든 위로는 어떤 관계를 필수로 전제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속단하기에 그 말들은 너무도 따뜻했다. 아픔이 많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어떤 이에게는 작은 말 한마디가 그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따뜻하고 살 만한 곳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