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내 안에서 수 가지의 취향과 버릇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는 여행을 가면 꼭 그 나라의 대학을 돌아보는 일인데, 그것은 꾸며지지 않은 그 나라의 본래 모습을 경험하고 싶은 나만의 요상한 욕구로부터 왔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기꺼이 빼고 가식 없는 소란스러움과 흔쾌히 하나가 되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생겨난다. 주근깨 가득한 화장끼 없는 얼굴, 양 팔 가득 쌓아 올린 두꺼운 전공 서적,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소매 끝에 묻은 커피 자국, 딸깍 딸깍 요란한 소리를 내는 떨어진 구두 굽. 여행이라는 화려한 이름 속에 감춰진 그들의 삶의 일부, 요컨대 진짜 모습 말이다.
이런 낯선 도시의 민낯에 열광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이따금씩 우리의 관계를 생각했다. 그럴싸한 조건들을 앞세워 뒤로 숨어버린 진짜 나의 모습을 만났을 때 “그래 그 자체로 '너'구나.”라고 말해 줄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 오늘따라 까칠한 피부나 미처 정리하지 못한 손톱. 혹은 사소한 일에도 급격히 시무룩해지고 마는 못난 내 모습까지, 그것 조차 '너'일뿐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
부디 당신 나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나 당신께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