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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Sep 12. 2022

귀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

어언 두 달간 심신이 편치 않았다. 몇 년 만에 심하게 몸이 아프고 나니 모든 일에 의욕상실이었다. 에너지가 방전되어 번 아웃된 느낌이랄까 그저 뒹굴뒹굴하고 싶었다. 들어가는 나이 탓인지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커졌다. 코로나 덕분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된 우리 가족이 다시 뿔뿔이 흩어질 것 같아 벌써부터 쓸쓸해졌다. 큰 아이는 아직 어디로 갈지는 미정이지만 공부를 더 하러 타주로 떠날 것이고, 작은 아이는 캐나다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다.  여러 잡다한 생각들이 맴돌았다. 결국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생각병’에 갇혀 버렸다.


‘아홉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아홉수'에는 건강, 사업, 관계 등에서 뜻하지 않은 난관을 만나 고난을 겪을 수 있다고.  ‘아홉수’의 고비를 잘 넘기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나도 ‘아홉수’라 유달리 삶의 무게가 느껴지나 싶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그리워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모든 것은 멀쩡하게 얄미우리 만큼 그대로였다. 거리의 나무들과 표지판, 몇몇 집 앞에 놓인 아이들의 자전거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화려한 운동복 차림으로 ‘하이’하며 인사하는 동네 러너들.


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살짝 뛰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숨이 차 다시 걷기에 집중하며 드높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온통 하늘색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 하늘은 나의 마음처럼 밋밋하고 덤덤해 보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이름 모르는 새들이 반대편에서 화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앞 다투어 자질구레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주고받았다. 순간 야외에서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는 듯했다. 꽤 길게 혼잣말로 지저귀는 듯한 바이올린의 비브라토(vibrato : 음을 상하로 가늘게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기법) , 느린 속도로 울림 있는 선율을 노래하는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심오하게 호소하는 클라리넷 소리가 연상되었다.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 할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듣기 좋은 화성을 만들어냈다. 전혀 싫증 나지 않는 음악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악기가 튀어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다가 통일성과 다양성이 함께 존재하는 흥미진진한 음악이었다. 가끔 등장하는 벌레들의 특별 출연조차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교향곡이었다.


째잭 째잭, 찌직 찌직, 스르르르~, 까악~ 꺼억~, 쪼르르르.

다시 까악~ 꺼억~, 스스 스스 …


줄리아 캐머런은 아티스트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에서 말한다.

“귀를 기울이고 잘 들을 때 우리는 매일 주변의 수많은 신호와 단서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 멈춰 서서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집중하는 순간, 특히 시간에 쫓긴다고 느낄수록 잠시 멈추고 집중할 때 시간을 빼앗기기보다 오히려 선물 받는다.” p11







나는 그날 아침 새들이 주인공인 자연 교향곡을 통해 소중한 하루를 선물로 받았다. 귀를 기울이니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얹고 얹어 무겁게 만든 삶의 무게에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나 스스로 덧칠에 덧칠을 더한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본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몸이 무거울 때

마음이 무거울 때

세상과 담쌓고 꽁꽁 숨지 말자.

날마다 선물인 소중한 하루를 그냥 보내버리지 말자. 


세상 밖으로 박차고 나가서

걸으며 심호흡을 하며

자연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리고

나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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