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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Sep 30. 2022

잘 살고 있어요?

25살이 되는 아들의 생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나, 남편, 아들, 딸 고작 4명뿐이지만 각자 다 바쁜지라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생일 날도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결국 하루 앞당겨 크랩 하우스에서 크랩이나 실컷 먹기로 했다. 덕분에 진짜 생일인 다음날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김치전과 막걸리 한 잔, 그리고 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막걸리를 마신 탓인지 약간 알딸딸해진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갑자기 진통이 오기 시작한 그날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넌 병원에 가자마자 1시간 반 만에 세상에 나왔어. 엄마가 무통분만 주사를 맞으려고 계획했는데 뭐가 그리도 급한지 주사 맞을 시간도 안 주고 쑥 나와버렸어....  그리고 넌 엄마가 걸어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게 했어. 왜인 줄 아니? 너무 세게 차서. 하하하.”...


한국 발음이 좀 서툰 아들은 말했다.


“그랬어요? 미안해요. 많이 아프게 해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약간은 어색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나는 곧바로 아들에게 말했다.


“아니야. 이상하게도 네가 모락모락 꿈틀거릴 때도, 권투를 하듯 세게 쿵쿵 찰 때도 네가 엄마한테 할 말이 많은 것 같아 참 좋았어. 지금도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어. 참으로 행복했어. 태어나 줘서 고맙고...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촛불 끄기 전 네가 바라던 소망 이루어지길 바라.”


순간 아들의 미소진 얼굴을 쳐다보며 소박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인생 별거 있나? 이런 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열심히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여겼다. 날마다 짜인 스케줄대로 잘 이행하는 것, 학생들이 성과를 내도록 집중하는 것, 그밖에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처리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얻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저녁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써 내려가는 삶이 잘 사는 삶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 소식을 전해주신 스위트님이 떠오른다. 내 주변에는 정말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스위트님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에는 절대 부족한 분이다. 그녀의 무한대의 책과 문구사랑, 글쓰기, 뛰어난 뜨개 솜씨, 달리기. 게다가 늘 함께하는 남편님, 예쁜 두 따님, 두 고양이 '시로와 네로'까지. 한 마디로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시는 분으로 볼수록 매력이 넘치며 따뜻한 마음까지 소유한 '알짜배기 부자'다. 그래서 가끔은 살짝 부럽기도 한! 


스위트님은 '꿈꾸는 러너'라는 북클럽도 운영하신다. 책도 읽고 달리기도 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둘 다 챙길 수 있는 북클럽이다. 나도 스위트님의 이끌림에 얼마 전부터 멤버로 발은 담그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나에게 신기한 북클럽이다. 그들은 열심히 달리며 달린 거리를 날마다 여러 모습으로 인증한다. 여러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하고 달리기로 펀드도 한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덩달아! 덕분에! 행복해진다. 설렘!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그것도 고민 끝에 걸으러 나가는 나에게 ‘1분 뛰기’를 시도하게 한다. 우습지만 조만간 '5분 뛰기' 도전도 소망한다.


꿈러너들의 '달리기'도 내가 즐기는 '낭독'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내가 낭독에 빠져 나의 일상이 낭독이 되었듯이, 꿈러너들의 일상은 달리기인 것이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좋아하는 것이 꿈으로 연결되어 예쁜 꿈을 낳고, 또 그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멋진 삶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잘 살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정심을 찾아 나 자신을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삶 속의 삶의 여유라고나 할까. 바쁜 일상이지만 반복적인 삶에 지배되지 않고 그 안에서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삶 말이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하루 5분이라도 심호흡을 하며 나의 숨길을 느껴보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일지언정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거닐어 보자. 또 책을 읽으며 진정한 나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자. 이렇게 이모저모로 일상 속에서 매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축적되어 단단해진 평정심은 때론 힘든 역경의 순간을 만날지라도 오뚝이처럼 꾸준히 일어나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나누는 삶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에겐 ‘나눔’의 삶만큼 소중한 것이 없을 테니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삶은 진정한 마음의 여유를 지진 ‘마음부자’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일이다. 이 순간 나는 너무나도 받은 것만 생각나니. 


내가 진행하고 있는 매일 낭독드림과 낭독 북드림을 통해 들려주는 꿈공방 도공님들의 응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너무도 값진 힘이 된다. 매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청하고 배려하며 좋은 방향을 함께 찾아가는 콜라 낭독의 콜라님들은 보석같이 빛나는 소중한 인연이다. 낭독은 힘을 빼고 마음으로 오로지 텍스트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는 성우님의 조언들은 사랑 그 자체이다. 조용히 방문해 따뜻한 댓글로 응원과 위로를 남기고 가는 인친님들 또한 무한 감사하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없을 정도로 나는 너무도 큰 선물들을 받고 또 받았다. 준 것보다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무거운 선물 보따리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숙제로 다가온다.



잘 살아보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숙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자.

너무나도 과한 선물 보따리가 가벼워져 보자기만 남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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