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 II

by 한희정

차 안에서 큰 아이가 챙겨 온 과일과 스낵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우고 박물관에 들러 그림을 감상하고 있으면 큰 아이의 인터뷰가 끝날 시간과 얼추 맞을 것 같아 Virginia Musium of Fine Art로 향했다.



Virginia Museum of Fine Art는 1936년에 세워진 북미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이다. 아프리카, 미국, 영국, 아시아 등 여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시대별로 배치되어 있으며 입장료도 무료이다.


그림을 전혀 모르는 나는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시실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한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던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갑자기 누나가 더 잘 그린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동조하며 배꼽을 잡으며 웃어대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왜 이 유명한 곳에 걸려있는 것인지, 왜 이 그림이 유명한 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웃프지만 큰애를 제외한 울 가족은 그림에 젬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뷰가 끝났다고 큰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은 큰 아이가 초밥을 사기로 했다. 그러나 리치몬드에는 우리 동네와는 달리 너무도 많은 초밥 식당들이 즐비해 있었기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인 두 후보 식당은 질이 좋아 보이나 가격이 센 편인 고급 초밥 식당 한 군데와 가격이 적당하면서 리뷰도 좋은 뷔페식당이었다. 결국 배들이 출출한지 다수결에 의해 초밥뷔페가 이겼다. 체인점도 곳곳에 많아 맛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나 뷔페는 말 그대로 뷔페였다. 종류는 많았지만 우리는 눈으로 배를 채울 뿐이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먹은 탓에 한동안 배가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라면서 피곤해 보이는 큰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70명의 인터뷰이(interviewee)들이 한꺼번에 함께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먼저 학교 이곳저곳을 다 구경하고, 교수님들과 학장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또 70명의 학생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왜 이 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는지, 나의 삶의 철학은 무엇인지 등의 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포함하는. 그러고 나서 한 큰 강의실로 옮겨져 이상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물화 3분 안에 스케치하기. 다양한 일반 상식에 대한 질문들에 답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별 토너먼트. 지원한 학교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아보기 위한 팀별 대항 Jeopardy! 비누로 각자에게 주어진 이빨을 제한된 시간 안에 모형 뜨기. 그리고 모형 뜨기를 완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라도 하듯 계속되는 여러 선배들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그들의 질문 공세에 답하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더욱더 드높아 보였고 쌀쌀한 바람이 피부에 와닿았다. 아들의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히 드러나보였지만 집으로의 운전도 도맡았다. 긴 하루였다.




딸!

좀 늦어지긴 했지만 너의 도전을 축하해!

새로운 길로 가는 너의 길에 늘 축복이 있기를 바라.

건강하고!



아들!

귀엽기만 하던 아들이 이렇게 성장한 줄 몰랐네.

막내라서 늘 아기 같았는데…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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