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독가 한희정 Dec 30. 2022

넘 편 같은 남편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은 넘 편!


친구들을 너무도 좋아하는 넘편!

남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넘편!

평생 노래밖에 모르는 넘편!

그렇지만 사람들이 레슨을 원해도 절대로 하지 않는 넘편!

어떤 상황에서도 늘 긍정적이며 웃을 수 있는 넘편!

매주 목요일 새벽이면 지겹지도 않은지 늘 같은 사람들과 커피 마시러 나가는 넘편!

부엌 싱크대 닦아주다가 갑자기 부르심을 받고 달려 나가 교회 나무 정리하다가 옻나무에 중독되어 몇 달 동안 고생한 넘편!

아이 생일인데도 교회의 온갖 회의와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하는 넘편!

더 이상 내겐 통하지 않는 유머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아직도 웃게 만드는 넘편!

나에게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잘도 참으며 바라봐주는 넘편!

가끔 나와의 대화 중 언성이 높아져 낮추라고 한 마디 건네면 큰 소리 낸 적 없다며 잡아떼는 넘편!

당뇨에 나쁘다고 먹지 말라고 하면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괜찮다며 굳이 먹는 넘편!

30년 넘게 살아갈수록 점점 내 눈에 아주 아주 큰 콩깍지가 씌었었음을 실감 나게 하는 넘편!       

.

.

.


넘편의 변화를 느끼다!


그런데 그가 몇 주 전부터 바뀌었다. 평상시의 넘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피아노 연습을 한다.

추위에 상관없이 날마다 운동하러 나가자고 한다.

현미밥과 야채를 챙겨 나에게도 먹으라고 권한다.

집안이 조용해서 어디 있나 찾아보니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다.



2022년 12월 25일!

 

코로나 후 3년 만에 전교인 연합으로 성탄 축하 예배를 드렸다. 찬양대의 성탄 칸타타와 남편의 특송도 있었다. 오랜만에 남편이 부르는 Oh Holy Night!(오 거룩한 밤)을 들었다. 함께 살아보고 싶게 만든 그 노래를. 나를 홀딱 빠지게 한 그 노래를.


1989년 12월 25일 명동성당 성탄 자정미사에서 불렀던 남편의 특송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비록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며칠 전에 들었던 그 노래는 또 다른 깊이 있는 울림이 있어 넘편으로 향한 섭섭한 마음이 다 사그라지는 듯했다.


나는 넘편의 소리를 사랑했던 것일까...

넘편을 사랑했던 것일까...

30년 이상을 함께 한 지금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자 웃고 만다.



넘편의 응원 한 마디!


어제저녁, 함께 식사를 하면서 넘편은 말했다.


“자긴 지금 잘 살고 있는 거야. 지금처럼 좋아하는 낭독 하면서 즐기면서 살아. 인생 별거 있어? 우리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되지. 돈이야 적당히 있으면 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자.”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어. 이젠 나이도 들었으니 피아노도 치면서 레슨도 해볼까 해. 스페인어와 베트남어도 공부할 거야. 코로나 상황이 더 풀리면 합창단도 다시 시작하고 선교도 가고..."



남편아!  많이 많이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년 만에 김치 담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