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는야 60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독가 한희정 Aug 28. 2023

잠시 외출을!  

미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가족들은 잠든 시간이지만 나는 말똥말똥이라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도 하고 미뤄두었던 녹음도 조금씩 한다. 하도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닌 여정 탓인지, 집으로 돌아와 긴장이 풀린탓인지 생각보다 시차적응하는데 오래 걸린다. 


연락을 해야 하긴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하나 있었다.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학생들 엄마들로부터였다. 레슨을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느냐고 묻는 독촉에 가까운 전화들이었다.  곧 매년 행사처럼 진행되는 오디션을 위해 곡도 정하고 접수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디션'을 떠올리는 순간 나의 입술은 더 이상의 고민 없이 움직였다. 


 "다른 선생님을 찾았으면 좋겠다. 볼 수 있으면 내년에 보자."라고. 


내년은 내년 일이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다시 학생들과 함께 할지, 다른 새로운 일을 하고 있을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냥 나의 마음을 따라가 보는 시간을 만끽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 3개월간의 한국 방문 후에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올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도 했다. 그러나 아직은 제자리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 나는 40년 이상 아프거나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곤 쉬지 않고 달려왔다. 학생들과 함께한 삶을! 그러나 이제 좀 멈춰보기로 한다. 


누군가는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해 놓았나 여길 것이다. 저축해 놓은 돈이 넉넉히 있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에겐 아무런 특별한 대책이 없다. 그 대책은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나의 마음이다. 예전 같으면 돈 걱정에 얽매여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마음이 너무도 가볍다. 하루하루가 설렌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데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주 거대한 사춘기가 이제야 온 듯도 싶다. 


Dog Walker, Library assistant 등 몇 군데 파트타임으로 일 할 만한 곳에 나의 이력서를 보내고 답이 없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나 자체가 좋았다.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것 맞다. 생각해 보니 나이가 많기도 하고 너무 솔직히 구구장장 늘아놓아서 인 것 같다. 다음엔 좀 줄여서 관련된 일만 간단히 써야지! 


엄마 집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었다. Yo Pop 가게 문 앞에 사람을 구한다고 쓰여있었다. 책 값 정도는 벌어야겠기에 무작정 들어갔다. 9월부터 하루에 6시간씩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 처음 하는 일이지만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무게를 달아 돈만 받으면 되는 일이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보다는 수입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원하는 책은 남편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좋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이스크림은 먹을 수 있단다. 집에 와서 남편한테 이야기하니 이 아저씨 대뜸 말한다. "좋겠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사실 거의 날마다 아들 방에 들어가 아들의 하겐더즈 아이스크림을 몰래 야금야금 한 두 개씩 꺼내 먹었다. 남편은 아이 것 몰래 먹는다고 킥킥 웃으며 그만 먹으라고 말했다. 몸에도 안 좋은 것을 왜 그리 날마다 먹느냐고! 하하. 



외출이다. 삶의 외출! 삶의 외도!이다.


어떻게 40년 이상을, 아니 평생을 한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을까? 

너무 늦은 외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나의 마음을 믿어보기로 한다. 

나의 지금, 현재의 시선을 따라가 보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