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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Sep 09. 2023

오래간만에 넘편님과 산책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목요일 오전이었다. 그런데 문쪽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싶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남편이었다.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도 되었다. 수요일 밤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몇 년째 매주 목요일 조찬모임에 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원산책이 취소되었단다. 


남편은 본드팍에 가자고 하였다. 본드팍은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제법 큰 공원이다. 예전에 근처에 살 땐 날마다 갔었는데 언제 갔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무리 더운 날 가도 그곳은 햇빛을 피할 수 있어서 걷기에 좋다.  멀대같이 키가 큰 나무들이 길 양쪽에 줄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웬일인지 늘 가던 코스가 아니라 다른 코스의 길로 가보자고 했다. 뭐 마다할 일도 없어 흔쾌히 그러자고 하였다. 바다를 끼고 걸었던 제주의 올래 6코스가 생각났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잔잔한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20개 이상의 다리를 건너고 나니 걷기 코스는 끝났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호수를 끼고 크게 한 바퀴 돌게 만들어 놓은 코스였다. 

왜 매번 같은 코스만 우리는 그동안 반복했을까? 

왜 한 번도 다른 길로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코스의 마지막 지점에서부터 파킹장까지는 나무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가도 웅장한 나무들이 보이는 노스캐롤라이나가 아닌 듯했다. 양 옆으로 넓디넓은 들판만 보였다. 쭉 뻗은 아스팔트 길을 통과해야 했다.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눈을 뜨고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얼굴도 따가웠다. 남편에 대한 완전한 감사에서 원망으로 바뀌었다. 


"이 아저씨야, 모자라도 좀 쓰고 가자고 하지! 선크림이라도 바르라고 말해주지! 선글라스도 필요하다고 말해주지!"



가끔은 가보지 않은 길은 설렘이고 흥미롭다. 

가다가 보면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어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10분 정도를 꾹 참고 어서 벗어나고자 뛰다시피 하니 다시 멋진 그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인생이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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