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옷깃 스침에
시련의 밑그림 잉태하고
애써 붙든 옷자락이
아픈 상처 배경 됩니다
초라하게 뭉뚱그려진 삶의 껍질에
그늘진 색채를 덧칠한 볼품없는 수채화를
낡아 귀 닳은 사각의 틀에 다독이며
온 밤을 달빛에 내줬습니다
그 위에
시든 미소 한 조각 걸어둔 채
사랑의 대가라 치부하기에 버겁고
지나는 열병으로 폄하하기에 너무 잔인한
첫사랑 비화를 훔쳐 떠난
희미해진 그림자를
채워지지 않는 서늘한 여백에 담아
오래된 창틀에 넣어 햇빛에 걸어놓습니다
민감한 햇빛이 그림자를 닦아내지 않고
외진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도록
각색되지 않은 책갈피에 조심스럽게 끼워두고
태연히 마루를 닦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