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추억

시월의 마지막 밤에

by 노란 보석

이제 미련 없이 떠나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 미련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나던 날은 따스한 봄날이었습니다.

연노랑 수줍은 얼굴로 살포시 웃으며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습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면서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예쁘다고 살랑살랑 쓰다듬어 주는 봄바람의 손길은 정말 부드럽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꽃샘추위라는 놈이 불시에 와서 괴롭힐 때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이렇게 얼어 죽는가 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놈은 쌀쌀맞고 따뜻한 정이란 건 손톱만큼도 없는 냉혈한입니다.

갑자기 진눈깨비를 데리고 와서 퍼붓고 영하로 얼리는 꽃샘추위는 정말 싫습니다.

놈이 한번 지나가면 모두가 움츠러들고 때로는 얼어 죽거나 동상으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예쁜 꽃 누이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예쁜 분홍색 옷을 입고 피어난 그 애들은 너무나 예뻐서 오빠인 나도 흠뻑 빠질 정도입니다.

그 애들이 예쁘다고 온 동네 벌과 나비가 모두 몰려와서 난리법석을 떱니다.

그 애들은 동그란 작은 열매를 남기고 너무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나에게 열매를 부탁한다고 하면서 울면서 떨어졌습니다.

나는 동생들을 잡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슬퍼하는 나에게 내 친구 바람이 말합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그래도 귀엽고 올망 똘망한 열매 조카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나는 비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비를 맞으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솔솔 내리는 봄비는 싱그러워서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한 여름 뜨거울 때 내리는 소낙비도 오아시스만큼이나 반갑습니다.

비를 맞으면 갈증도 달래고 몸도 깨끗하게 씻어 낼 수 있으니까요.

비를 맞고 나면 우리는 쑥쑥 자랍니다.


내 주위에는 형제들과 친구들이 많아서 항상 즐겁습니다.


날마다 옆집과 옆동네 소식을 전해주는 친한 바람난 친구가 있습니다.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이듯 소식을 전하고 지나갑니다.

그렇게 다정하던 친구가 때로는 짓궂어서 나를 못살게 굴어 싫을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사정없이 밀어젖히고 큰소리로 웃고 지나갑니다.

그럴 때는 모두가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 소리를 내며 공포에 떨곤 했습니다.

그 친구가 화가 나거나 장난을 칠 때는 엄마 손을 꼭 잡아야만 합니다.


그 친구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안타깝게 떠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참고 견뎌냈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곧 부드러워져서 다정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곤 했습니다.

바람난 친구는 정말 변덕이 심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어 즐겁습니다.

그 친구는 여기저기서 본 것이 많아서 아는 것이 많고 재잘재잘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합니다.

그 친구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쁜 새들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곤 했습니다.

꾀꼬리는 내 옆에 아름다운 집을 지었습니다.

노란색 옷을 입은 꾀꼬리는 제일 예쁜 새입니다.

"슈퍼스타 새" 노래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노래를 잘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는지 알 것입니다.

꾀꼬리가 알을 낳아 예쁜 새끼 네 마리를 키웠습니다.

나는 햇볕도 가려주고 빗물도 막아주며 새끼들이 자라는 것을 매일 지켜보았습니다.

그때가 제일 즐겁고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싫은 친구는 매미입니다.
그 친구는 너무 시끄러워서 좀처럼 쉴 수가 없습니다.

더운 여름 날씨에 낮잠 좀 자려고 해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놈은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막무가내 친구입니다.

너무 시끄럽다고 원성이 자자하니 신께서

"너는 칠 년 동안 깜깜한 땅속에서 참회를 하고 오너라"

라고 벌을 내려서 칠 년 만에 온 것입니다.

그래도 "제버릇 개 못준다"라고 하나도 깨달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여름 방학 때만 찾아왔으니 참고 살았지요.


햇볕이 뜨거울 때나 비가 올 때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쉬었다 가곤 했습니다.

우리 집은 워낙 커서 수십 명이 함께 쉴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여름에는 우리 집이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요 쉼터입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들에게서 아무 대가도 받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열매 조카들을 열심히 돌보았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받아 열심히 일을 해서 영양분을 엄마에게 주면 엄마가 젖을 먹입니다.

조카들은 튼튼하게 쑥쑥 자랐습니다.

이제는 크기가 나보다도 훨씬 큽니다.

가을 햇볕을 받아 파랗던 피부도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조카들도 각자 떨어져서 여기저기로 팔려 나갈 것입니다.

바람이 가르쳐 준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봄에 주로 연두색 옷을 입습니다.

여름이 가까이 다가오면 모두 녹색 옷으로 바꾸어 입습니다.

가을이 되면 또 다른 색의 옷으로 바꾸어 입습니다.

가을 옷은 주로 노랑, 주황, 빨강 등 화려한 색동옷으로 차려입습니다.

모두 예쁜 옷을 입고 저마다 아름다움을 다투어 뽐냅니다.


은행에 다니는 옆집 친구는 노란색 옷을 좋아합니다.

그 친구가 입은 노랑 원피스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부럽고 질투도 납니다.

그러나 엄마는 노란색 옷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사주지 않았습니다.

바람은 나에게 말합니다.

"각자 개성을 살려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야. 너는 너에게 어울리는 것을 입어!"


나는 빨간색 옷을 제일 좋아합니다.

정열적이라 좋습니다.

엄마가 만들어 준 나의 빨간색 셔츠는 내가 생각해도 진짜 멋집니다.

주황색과 주홍색 무늬를 수놓은 예쁜 빨간색 셔츠입니다.


그 옷을 입는 늦가을에는 사람들이 나를 보러 몰려오곤 합니다.

멀리 서울에서까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내 옆에 서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나는 언제나 멋진 포즈로 기분 좋게 사진 촬영에 임해 줍니다.

내가 예쁘고 멋지다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을 때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겨울 옷이 없습니다.

엄마가 겨울옷은 준비하지 못했답니다.

아니 겨울 옷을 입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엄마도 알고 나도 압니다.

그렇지만 겨울옷에 대해서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슬프니까요.

아마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예쁘고 멋진 옷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나면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집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있었던 이별을 아쉬워하는 노래입니다.

흡사 지금의 내 기분을 표현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흰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붑니다.

손이 시리고 온몸이 춥습니다.

늦가을 밤은 너무도 춥고 쓸쓸합니다.

이제는 추억만을 간직한 채 떠나가야 합니다.


엄마는 아쉬워서 손을 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압니다.

돌이켜 보면 짧지만 즐겁고 사랑받아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바람이 얘기한 것처럼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요?
눈물이 나지만 이제 미련 없이 떠나려 합니다.
제 친구들은 벌써 많이 떠나갔습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떠나갑니다.

바람난 친구가 가르쳐준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입니다.



空手來空手去


<당송시대 한시>

空手來空手去是人生(공수래공수거시인생)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이란 한 조각의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그 뜬 구름이 없어짐이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며,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삶과 죽음이란 것도 또한 그와 같다.

獨一物常獨露(독일물상독로)

그러나 여기 진한 자아만 항시 홀로 뚜렷하여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삶과 죽음을 따르지 않고 맑고 뚜렷하구나


*의역 Daum 임프맨




하지만 내년 봄에 꼭 다시 오겠다는 꿈을 안고 떠나갑니다.

내친구 바람은 "법화경(法華經)"에 나와 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

(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년 봄 노란 잎이 예쁘게 돋아 나오면 그것이 나인 줄로 알아주세요.


이제 내 친구 바람따라 세상 구경이나 해 보렵니다.

몽롱한 안개속 단풍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런가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준비했습니다.

나를 추억하면서 불러보세요.




잊혀진 계절


이용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https://youtu.be/4WQwW6FrDGc






*"공수래공수거"라네요.

화려했던 젊은 날도 잠시!!

남은 세월 정열적으로 살면서

돌아가야 할 때를 생각합니다.

<노란보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