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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15. 2021

자전거로 만나는 새로운 풍경

은혜로운 나의 자전거

  자전거는 어린 시절, 피아노 다음으로 내가 갖고 싶어하던 물건이었다. 엄마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사 주지 않았다. 자전거를 너무 타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나는,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올 때마다 갖은 애교를 떨어서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탔다.  


  초등학교 친구인 지숙이는 당시에 바구니가 달리고 예쁜 하늘색의 새 자전거를 갖고 있었다.

  “지숙아, 토요일에 뭐해? 나랑 학교 운동장에서 놀지 않을래? 나 자전거 좀 가르쳐주라...응?”

  “글쎄...”

  “내가 맛있는 과자 줄게.”

  지숙이한테 맛있는 과자와 사탕을 쥐어주며 학교로 오게 했다. 착한 지숙이는 처음 자전거를 타는 내 뒤에서 자전거를 힘겹게 붙잡아 가면서 가르쳐 주었다.

  “지숙아, 놓치 마! 내가 놓으라고 할 때까지 절대 놓치 마!”

  “알았어.”

  “정말 놓으면 안 돼.”

  위태롭게 지그재그로 겨우 자전거를 타다가 뒤를 돌아 보았는데, 지숙이는 저 뒤에서 웃으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으아, 뭐야! 언제 놨어?”

  “앞에 보고 타!”       

  그렇게 지숙이가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전거를 탈 기회가 영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중학교 같은 반이 되었던 D가 가끔 타고 오는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었다. 가끔 고모네 집에 있에 놀러 가서는 짐을 실을 수 있는 커다랗고 무거운 '짐빠'라고 불리던 자전거까지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자전거를 사 주지 않아도 혼자서 자전거를 배웠고, 어린 마음에 스스로 내가 대견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더랬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자전거를 탈 기회도 별로 없었고, 관심도 줄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운전을 하고 다니다보니 자전거는 내 일상의 영역에서는 들어올 일이 없었다.

  그러다 가끔 해외 여행을 갔을 때 자전거를 타고 돌기에 예쁜 소도시에 머무르면 자전거를 빌려 타곤 했다. 특히 중국 항저우에서 아름다운 서호를 끼고 자전거를 탔던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만에서는 르위에탄 서쪽 쉐이셔에서 샹산까지 3km 정도 멋진 풍경 속을 자전거로 달렸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적어서 더 운치있게 즐길 수 있었다. 타이둥의 삼림공원과 해안 공원도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운데 자전거를 타고 즐기면 더욱 멋진 곳이다.     



  10대 초반의 나이에 배워서 잠깐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 거의 25년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몸이 그 감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주 가끔 여행지에서 즐겼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싶어졌다. 친구 K가 자전거를 타보는 게 어떻겠냐고 툭 가볍게 던진 말이 이상하게 훅 꽂혔다. ‘그래, 자전거를 타 보자. 운동도 되고 좋잖아.’


  사실 나는 요즘 숨쉬기와 걷기 외에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지인들은 이제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반드시 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내 체질에는 어느 운동도 맞는 것이 없었다. 요가, 방송댄스, 한국무용, 라틴댄스도 발을 담가봤으나 영 따라하기 힘들었다. 탁구는 그나마 괜찮게 친다는 말을 들었던 유일한 운동인데 함께 할 상대가 없어 할 수가 없었다. 동네 탁구장도 대부분 커플들이 등록을 해서 혼자 가는 것이 민폐가 되는 것 같아 포기했다. 자전거라면 날씨만 괜찮다면 혼자 아무때나 할 수 있으니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애용하는 당근 마켓에 키워드 알림을 바로 설정했다. 며칠 동안 올라오는 물건을 살펴보고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딱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았다. 여성용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뒤에 안장도 있고, 산 지 1년 밖에 안 된 삼천리 자전거였다. 알림이 울리자마자 2초 안에 채팅으로 연락을 해서 우선권을 받았다. 판매자가 원하는대로 바로 판매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타보니 사이즈 상태도 좋았고 두꺼운 자물쇠도 있었다. 동네 자전거 매장에서 구입한 거라서 AS도 거기 가서 받으면 된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바로 입금을 하고 자전거를 받아왔다.


  30년 만에 갖게 된 나의 자전거를 'Grace(은혜)'로 명명했다. 자전거와 함께 은혜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다. 동네 공원에 산책을 나갈 때도 공원 주차장까지 차를 갖고 가서 엄마에게 핀잔을 들었었는데, 이제는 공원은 물론 더 멀리 있는 도서관과 하천 주변 산책로까지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앞으로 동네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다닐 생각이다. 기름값도 아끼고, 운동하면서 건강도 유지하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여행을 할 때 차만 타고 다니면 그곳을 속속들이 느낄 수가 없었던 것처럼, 12년을 살았던 우리 동네인데 내가 몰랐던 곳이 참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동네가 낯설면서도 새롭게 다가온다. 가끔 걸었던 하천 주변 산책로 아래에 잘 꾸며놓은 사설 요양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머,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다 있었네.’ 호기심에 잠시 멈춰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자전거로 누비는 우리 동네가 더 정답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휴대폰을 하며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도가 아닌 자전거도로 쪽으로 걷는 무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되었다. 별 생각없이 거닐던 인도가 얼마나 많이 패였는지, 자전거 도로가 어느 인도에는 끊겨있는지, 자전거 거치대는 어디어디에 있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자나 도보자일 때는 안 보이던 것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을, 하늘도 맑고 청명하며 날씨도 상쾌하다. 은혜로운 나의 자전거를 타기에 딱 좋은 날들이다.

나의 은혜로운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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