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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2. 2021

이상하게 에코백이 제일 편하네

나의 데일리 에코백

 가방은 단지 무언가를 넣어 들고다니는 도구 이상으로 많은 여자들에겐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고가의 명품백을 사려고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서 있기도 하고, 여유가 안 되면 중고로라도 사서 어떻게서든 명품백을 하나 지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20대에는 명품백에 대한 큰 욕구가 없었다. 가방이 다 똑같지 뭐하러 몇 백만원이나 들여서 비싼 가방을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 시절 내 눈에는 명품 가방이 예쁘다는 생각도 전혀 안 들었다. 디자인이나 색깔 등 너무 올드한 느낌이기만 하고, 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왜 똑같이 들고 다니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사회초년생 공무원의 얄팍한 월급으로는 그런 값비싼 명품백을 살 능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울렛에서 중저가 브랜드에서 예쁜 디자인의 가방을 잘 골라서 세일가로 득템해서 들고 다니며 나름 만족했었다.      


  30대 중반이 되자 나도 슬슬 명품백에 눈독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명품백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괜히 내가 갖고 다니는 중저가의 가방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비싼 값을 치르고 사기엔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막상 살까해도 명품 가방은 수선비도 몇 십만원인데, 굳이 효용성 떨어지는 가방을 사야 하나 고민도 됐다.           



  30대 중후반 유럽 여행을 혼자 가게 되었다. 가기 전부터 꼭 돌아올 때는 명품가방을 한 개 사 와야지 마음을 먹고 갔다. 파리에서 내 여행 계획 중에는 미술관,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마레 지구와 샹젤리제 거리 걷는 것 못지않게 '루이**' 파리 본점에서 가방을 사 오는 것이 스스로 부여한 중요한 임무였다.    


  혼자 여행 중에 가끔은 일행을 만나 함께 하기도 한다. 파리에서 20km 떨어진 베르사유 궁전에 3명의 동행자와 함께 하게 되었다. 20대 중반 남학생 1명과 20대후반의 남녀 직장인, 30대 중반의 나 이렇게 네 명이 나름 마음이 잘 맞아서 하루종일 같이하면서 사진도 찍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납작돌이 깔린 광장에서 점프샷을 찍다 넘어지는 바람에 내 무릎이 까지고 피가 살짝 난 것 말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저녁 때 돌아오는 기차에서 일행들은 아쉽다면서 샹젤리제 쪽으로 가서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지자고 제안했다. 나는 다음 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그날 저녁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인지라 명품백을 꼭 사야했다. 사정을 말하니 20대 중반 남학생은 “그럼 우리 같이 매장에 가서 누나 가방을 먼저 사요. 그리고나서 밥먹으면 돼죠.” 라고 말하는 바람에 우리 넷은 다같이 ‘루이**’ 본점으로 향했다. ‘우와, 여기가 바로 루이** 본점이구나.’ 감격스러울만큼 본점의 입구부터 매장의 모습은 품격있고 위용이 넘쳤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가방을 몇 개 두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떤 것을 사야 할 지 또 한참을 고민했다. 20대 남학생은 자기 누나 가방을 많이 봐서 잘 안다면서 어느 가방이 디자인 면에서 더 예쁘고, 오랫동안 갖고 다니기에도 좋은지, 이런저런 조언을 옆에서 해 주었다. 물건 살 때 혼자 결정을 잘 못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지라 그 조언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가격을 지불하고 야무지게 텍스 리펀 서류도 챙겨서 아주 큰 상자에 곱게 담긴 가방을 다시 커다란 쇼핑백에 넣어서 나왔다. 20대 후반의 여자 동행자는 커다란 루이** 쇼핑백을 든 나를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언니, 그렇게 쇼핑백을 대놓고 갖고 다니면 누가봐도 관광객인데, 명품백 샀다는 거 다 티내서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에요.”.

  저녁 식사를 한 레스토랑에서 할 수 없이 포장 상자를 다 버리고, 보증서만 명품백 안에 넣은 뒤 미리 갖고 있던 천 가방에 넣어서 정체를 숨긴채 고이 숙소로 잘 가져왔다.       

 

  그 뒤 이어진 서유럽 몇 개의 국가를 다닐 때마다 숙소에서 나의 첫 명품백은 천 가방에 꽁꽁 숨겨두고 캐리어에 넣고 잘 잠가두며, 여행이 끝날 때까지 누가 혹시 훔쳐갈까 온 신경을 다 쓰며 밤마다 확인했다.(호텔방에 혼자 묵을 때는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오기도 해서 염려되고, 한인 민박 도미토리에 묵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였다.) 그렇게 애지중지 소중하게 다루어 건너 온 나의 가방!      



  처음에는 출근할 때 몇 번 명품백을 가지고 갔었다. 근데 아침 일찍 출근해서 거의 야근하고 퇴근하는데 그 비싸고 귀한 명품백을 함부로 들고 다니다가 괜히 흠집을 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보니 내 일상에서 명품백은 그냥 방 안에 고이 모셔두게 되었다. 어쩌다가 서울에 약속이 있어 나갈 때나 모임이 있을 때 몇 번 들게 될 뿐이었다.


  한 번은 소개팅을 하게 되어 예쁘게 단장하고, 오랫동안 방 안에 잠자고 있던 명품백을 들고 나갔다.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커피숍 지하 주차장에 차를 두고 바로 식당에 걸어가려던 참인데, 커피숍을 나오자마자 갑자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어, 내 가방 비 맞으면 안 되는데...' 입고 있던 코트로 가방을 감싼 채 소개팅 남에게 잠시 지하 주차장에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차에 명품백을 두고 식당으로 간 적도 있다.         


  그 뒤로 밖에 나갈 때 오히려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흐린 날에 서울에 갈 때 갖고 나갔다가 언제 비라도 쏟아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컸고 모임 자리나 출장에서도 비싼 가방을 함부로 바닥에 둘 수 없어 무릎 위에 꼭 안고 있으려니 불편하기도 했다. 이 명품백은 물건을 넣어 갖고 다니는 가방의 역할을 나에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소중한 아이를 챙기듯이 잘 보살펴야만 했다. 해외처럼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일도 없고, 더더군다나 이 정도의 명품백은 우리 나라 길거리에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널렸는데, 나는 참 버거울만큼 가방을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중국에 살 때 친한 지인들과 짝퉁 가게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모를만큼 감쪽같은 솜씨의 가방 중에 고르고 골라 몇 개를 샀다. 중국에 있을 때는 가방은 물론 지갑도 여러 개 짝퉁으로 사서 들고 다녔다. 너도나도 짝퉁을 사용하다 보니 짝퉁을 갖고 다니는게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는커녕 서로의 가방이나 지갑을 보며 어디서 얼마주고 샀는지 정보를 공유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같이 쇼핑하러 가기도 하며 맘껏 짝퉁 가방을 향유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파리에서 산 명품백은 고이 모셔둔 채 중국에서 썼던 짝퉁 가방을 한동안 가지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랜드별로 바꾸어 매는 내 짝퉁 가방을 진짜라고 생각했다. “우와, 이거 ‘프라*’네요. 가방이랑 지갑이랑 세트로 너무 예뻐요.” 부러운 눈길을 보내는 이에게 굳이 나는 사실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전에 친한 지인에게 실은 중국에서 산 짝퉁이라고 하니까 “이제 나이 생각해서 그런 건 가지고 다니지 마.”라고 면박을 들은 후로는 그냥 웃음으로 넘어가곤 한다. 진짜 명품백보다 편안하게 아무 신경 안 쓰고 막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짝퉁이 사용하기에는 훨씬 편했다. 내면으로는 나는 없어서 짝퉁갖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파리 본점에서 사 온 멋진 명품가방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나는 평상시에도 갖고 다니는 짐이 꽤 많다. 휴지, 물티슈, 파우치 등등 사소한 것들을 다 챙겨 다니다보니 작고 예쁜 가방은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출퇴근 할 때는 업무나 수업자료 등 챙겨야 할 짐이 참 많다. 그러다보니 가볍고 튼튼하고 사이즈가 큰 가방이 가장 유용했다. 이에 딱 걸맞는 게 바로 에코백이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에코백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나도 여기저기 출장이나 연수에서 받은 출처가 크게 프린팅 되어 있는 에코백도 있고, 영국에서 물 건너 온 예쁜 꽃무늬가 프린팅 된 유명한 브랜드의 에코백까지 몇 가지 종류의 에코백가지고 있다. 전에는 보조가방으로 갖고 다니던 에코백을 작년부터는 데일리백으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물건을 담아도 찢어질 염려가 없고 가벼우니 들기에도 너무 편하다.      


  장롱에는 파리에서 온 명품백 말고도 이탈리아에서 사 온 나름 이름있는 브랜드의 가방도 있고, 한국산 중저가 브랜드의 예쁜 가방들도 꽤 있다. 근데 몇 년째 나는 모임이나 격식있는 특별한 자리에 가는 게 아니면 일상에서 대부분 에코백을 갖고 다니고 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크게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여유도 없다. 내가 갖고 다니기에 편하고 좋으면 그만이지, 에코백이 제일 편한 걸 어떡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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