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 아트로 웃음주기
샌드위치 가게 일은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샌드위치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다양하고, 빵종류도 꽤 있지만 틈틈이 메뉴들을 외웠다. 음료 레시피들도 점점 손에 익어갔지만 나에겐 두려움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한 라테였다. 따뜻한 라테는 스팀기를 사용해서 우유 거품을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 기술이 나에게 전무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에도 이런 고가의 커피머신은 다뤄본 적이 없었기에 스팀기는 내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루는 따뜻한 라테 주문이 들어와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우유에 스팀기를 가져갔는데 스팀기가 우유와 만나자 괴성을 지르며 우유 거품이 용암처럼 흘러 매장 바닥이 흥건해졌다. 요란하면서도 괴기스러운 스팀소리를 들은 매니저님께서는 우유가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 같다고 하셨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리라며. 머쓱해진 나는 그날부터 나는 제대로 된 따뜻한 라테를 만들기 위한 맹연습에 들어갔다. 라테 아트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우유 거품으로 꽤 마실만한 라테를 만들고 싶었다.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도 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손님이 뜸한 오후 시간마다 매니저님께 원포인트 레슨을 요청드렸다. 매니저님께서는 전직 호텔리어 출신으로 바리스타 강사도 하셨기 때문에 제대로 전문가셨다. 기본적인 스팀 원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고, 레슨에 따라 계속해서 예쁜 우유거품을 만들기 위해 연습했다. 그러자 어느 날 스팀 소리가 치직 치직 예쁘게 들리면서 미세거품이 균일하고 매끈한 광택을 내는 것이 아닌가. 그 맛을 보니 입가를 기분 좋게 감쌌다.
이제 거품 만들기는 어느 정도 가능해졌고 다음 단계로 거품 위에 예쁜 그림을 그려주면 되는 것인데, 또다시 연습이 필요했다. 라테 아트를 예쁘게 그리기 위해서는 '안정화'라는 작업이 필요한데, 스팀을 한 우유를 컵 속에 동전만 한 크기의 원을 그리며 어느 정도 속을 채워줘야 그 위에 거품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매니저님이 자세를 알려주시고 내가 따라 하는데 바보처럼 우유를 컵 밖으로 부어 원을 그린게 아닌가. 분명 머리로는 컵 속에 작은 동전을 그려야지 했는데, 손은 머리와 다르게 우유는 컵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없는 그 모습에 매니저님과 나는 한바탕 웃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라테를 만드는 친구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계속되는 연습에도 나의 하트는 마음처럼 예쁘게 그려지지 않았다. 가라앉는 하트, 찌그러진 하트, 꼬리가 꿈틀 되는 하트, 심지어 가운데 손가락을 닮은 하트까지 다양한 의미로 아트가 펼쳐졌는데, 그 그림을 보며 매니저님께서 나의 참신함에 꽤 많이 웃으셨다. 나는 라테 아트 하나만으로도 꽤 많은 웃음을 드렸다. 이런 라테를 손님들에게 내어드릴 때면 내 손이 많이 부끄러워졌다. 하트만이라도 제대로 그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묘하게 마음속에서 결국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뜨거운 라테 주문이 들어올 테면 연습 겸 내가 만들고, 오후 시간대에 몇 번씩 연습을 했다. 그러자 어느 날 내가 원하던 큰 하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연습을 한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바쁠 때라 따로 나의 라테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처음으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이든 라테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매니저님께서도 "오, 이제 하트가 그려지네?" 라며 나를 칭찬해 주셨다.
그동안 카페에서 별생각 없이 먹던 따뜻한 라테와 그 위에 예쁜 그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난 그 그림들이 그려지기 위해 이러한 노력이 숨어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앞으로는 작은 컵 위에 떠있는 멋진 그림을 보면 그 바리스타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감사를 더욱 느낄 것 같다. 내가 컵 밖으로 우유를 붓던 맹연습의 시간 또한 함께 떠오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