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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가게의 하루

빵순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다.

by 코지

13년간의 직장생활을 뒤로한 채, 나는 샌드위치 가게 직원이 되었다. 나의 직무는 매니저님과 함께 매장을 관리, 운영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일 등이었다. 첫 출근 날, 매장에 들어서는데 고소한 바게트 냄새가 매장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설레는 풍경이었다. 빵을 만들어주시는 실장님과 샌드위치를 제조해 주시는 분들께도 인사를 드렸다. 모두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커피부터 내려 먹으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우리 매장은 매일 직접 만든 바게트로 샌드위치를 판매하는데, 매니저님께서는 갓 나온 바게트를 맛보라며 한 조각 썰어주셨다. 일종의 QC이지만, 나는 이렇게 행복한 일이 또 있나 싶었다. 누룽지처럼 바삭한 겉면과 속은 폭신폭신 한 빵을 먹는다는 사실에 아침부터 도파민이 샘솟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방금 나온 빵인데 나는 그 빵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껏 올라간 도파민을 유지한 채, 샷을 추출해 우유를 넣은 아이스 라테와 함께 빵을 체크하고 매니저님의 교육하에 오픈 준비를 했다. 샌드위치를 보기 좋게 진열하고, 샌드위치 포장법을 배웠다. 매장 곳곳에 빠져있는 제품들을 채워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제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포스 사용법과 고객응대 방법 등과 함께. 테라스의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매장 안 자잘한 것들을 준비하고 나서 블라인드를 열고, 입간판을 옮기고 손님을 맞이했다. 기다리던 손님이 들어와 주문을 했다.


평일에는 포장을 하는 손님이, 주말에는 드시고 가는 손님이 많은 편인데 샌드위치가게는 대부분 오전부터 점심시간대가 가장 바쁘다. 계산이라도 잘못하는 날에는 주문서가 꼬이기도 한다. 다행히도 주문을 받거나 손님을 응대하는 것에 울렁증은 없어 자신 있게 포스 앞에 섰지만, 출근 후 첫 주말에는 일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정신을 못 차렸다. 우르르 와서 결정되지 않은 각자의 메뉴를 주문하고 결제를 하는데 몇몇 사람이 다시 주문을 바꾸어서 주문이 꼬여버린 것이다. 이런 날에는 계산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 매장은 8시:30분에 오픈을 해서 8시에 마감을 하는데,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대부분 서서 일을 해야 한다. 생각보다 가게는 할 일들이 많았다. 빵뿐만 아니라 비품등도 신경 써야 하는 것들도 많고, 음료 제조 등 쉴틈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의 직장생활로 앉아서만 일을 하다 장시간 서서 일하고 몸을 쓰니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긴장한 탓인지 목도 뻣뻣하게 경직되어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이 정도의 힘듦은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가장 좋은 것은 수시로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아침저녁으로 바게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먹고, 신메뉴 개발로 먹고, 메뉴를 익히기 위해 또 먹고. 빵순이에게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을까? 게다가 우리 매장은 오픈한 지 1년이 채 안되었기에 메뉴 개발에도 열려있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기 좋은 환경이다. 나에게 딱 맞는 직장인 셈이다.


한동안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빵을 먹을 수 있게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를 했다. 빵만큼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싶다고.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빵냄새들을 맡으며 일을 하니 몸은 고돼도 순간순간이 행복하다.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른다지만, 내가 빵회사의 직원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내가 자주 가던 단골 빵집 사장님의 3번째 매장이라니! 물론 직장생활보다 급여는 줄었고 하루 종일 서있느라 몸은 조금 고되지만, 그토록 원하던 빵속에 파묻혀 사는 삶이기에 지금 나의 일이 꽤나 만족스럽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끼니를 때우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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