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에 배운 것

내가 선택한 길, 아이들이 선택할 길

by 고종구

둘째가 태어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원래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곳이었고, 종종 마감에 쫒겨야 했던 자리여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생명들과 볼을 부비면서 지내는 순간들이 무척이나 애틋하면서도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라며 불안함이 싹텄다. 밤에도 수시로 깨어 잠들지 못하는 아가를 품에 안아 달래면서, 다용도실에 앉아 똥기저귀를 빨면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빨래들을 개면서, 이따금씩 내가 밥벌이의 주체로서 , '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다급함이 밀려왔다.


'괜찮아. 우리가 선택한 길이잖아'


옆지기는 그럴 때마다 내게 이렇게 말을 해줬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 한가운데서 줄어가는 통장 내역을 떠올릴 때마다 이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이 낯선 문장이 두둥실 떠올라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둘째를 맞이하고 싶다고, 둘째를 맞이하면 그의 삶에서 가장 부모를 필요로하는 순간에 다 내려놓고 그의 곁을 지켜주자고, 옆지기와 이야기 나눴던 말들이 더불어 떠올랐다. 직장을 그만둔 다음날, 드디어(?) 마을살이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며 함께 축배를 올렸던 옆지기와의 추억 뿐 아니라, 둘째가 태어나고 매일같이 돌아가며 미역국과 찬거리를 들고 집앞까지 찾아왔던 이웃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양손을 번쩍 들고 '언이야~~~'라고 외쳐주는 동네 형누나들의 기억들도 더불어 떠올랐다. 그들이 모두 불안해 하는 내 곁에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그런 내가 영상제작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을 때, 10년 후의 삶이 늘 그려지지 않아 늘 불안했었다. 오랫동안 영상노동자로 살아온 선배들이 내 눈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다 그렇게 지금의 나처럼 고민을 하다가 조용히 다른 길을 찾아간 것일까. 성향상 목표를 분명하게 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겼던 나에게, 이번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해보자고 하는 게 실수였던 것일까. 아니, 실수가 아니였다. 그 때의 나에겐 그것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선택했기에, 때가 되면 또 미련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것도, 이것도 모두 우리가 선택한 길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는 근거없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했다. 다만, 이제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단조로워도 오랫동안 무너질 걱정이 없는 울타리를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만들어왔던 역사보다, 이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두 아이들의 앞날이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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