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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May 16. 2024

죽음마저 민폐

존재와 소멸

바람만 스쳐도 “스미마셍" (미안해요)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줬는데 “고멘"(미안해)하는 곳

나는 존재가 미안한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자라는 증표가 필요했다. 그 증표는 처음엔 워킹홀리데이 비자, 그 후에는 유학비자, 마지막은 혼인비자였다. 3종류의 비자를 받고 갱신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에게는 학비를 전남편에게는 혼인신고를 부탁했다. 존재 자체를 위해 손을 벌려야 했다. 그들이 말하는 메이와쿠(민폐)였다.

그렇게 불안정한 존재라는 것, 존재의 불안정은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배우게 했다. 


무력감은 자라난다. 무럭무럭.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만 하던 무력감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 쓸모없다고.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내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그 증명은 우선은 내가 민폐가 아니라는 것부터였다. 철저히 안과 밖을 구분하고 겉과 속이 구분되는 곳에서 이방인인 나는 모든 것이 그들과 달랐다. 


“튀어나온 말뚝은 박힌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모두 같아야 하는 곳에서 모든 것이 달랐던 나는 모든 것을 똑같이 하기 위해 용을 썼다. 그들 같아져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카케모치(2 잡 이상의 N잡)를 했다. 그렇게 용을 쓰니 몸이 지치기 시작했다. 밖에 에너지를 몽땅 쏟아붓고 돌아온 집에서 나는 쓰러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설거지가 밀리고 빨랫감이 쌓이고 물건들이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그건 내 마음의 상태였다. 무력감에 좀먹은 마음에 구멍이 생겼고 우울이 파고들어 그 자리를 메웠다. 


무력감은 우울을 키운다. 

우울은 죽음의 친구다. 친구를 데려와 말을 건다. 

너 죽으라고.


흔히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자살사고에 관해서 우울증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언제든 죽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든 죽고 싶다가 아니라 “언제 죽어도 좋겠다”였다.


무력감과 우울감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몸이 휘청거릴 만큼 빠른 속도와 큰 진동으로 들어오는 쾌속 열차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스크린도어가 전부 설치되어 있지 않는 일본에서는 전차에 몸을 던지는 사고 인신사고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쉬워 보였다. 어느 날 출근길에 인신사고가 난 후 전차가 모두 정차가 된 일이 있었다. 어떻게 출근하지 하며 택시를 잡으려던 때 주변에서 웅성대는 말들에 나는 얼어붙었다.


“정말 민폐야. 출근 시간에 이러면 어떡해? 전차를 탈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폐는 끼치지 말아야 하잖아?” 


민폐. 내 존재는 스스로 선택한 소멸에도 미안해야 하는 것을 깨달은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존재도 민폐인데 소멸마저 민폐. 무력감은 무게를 더해 나를 짓눌렀다. 숨이 막혀왔다. 

막힌 숨틈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 같은 말.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난 미안하지 않을 수 있어?


존재도 소멸도 선택할 수 없는 그곳, 어떤 것을 선택해도 미안해야 하는 곳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도망이었다. 그렇게 나는 도망쳤다. 적어도 존재와 소멸은 선택할 수 있는 곳, 존재가 미안하지 않은 곳으로. 도망친 이곳에서 나는 존재를 선택했다. 나의 존재를 미안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존재한다. 

그러니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도망가도 된다고.

그곳엔 당신의 존재를 미안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부디 당신도 존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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