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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Jun 01. 2024

정신과 문 두드리기

늦게 죽는 약 있나요?

한국처럼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있을까? 

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 흉내 내고 싶어 했던 나라. 


기침 조금만 해도 내과 가서 감기약을 처방받고 어깨 조금만 뻐근해도 정형외과 가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이렇게 병원 가기 쉬운 나라에서도 여전히 정신과의 문턱은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정신병자라고 할 정도이니 “마음의 아픔”에 대한 편견은 지나치다 못해 가혹하다. 말이 조금 격해지기는 하나 이러니 가짜 “정신병자”들은 밖으로 나오고 진짜 “정신병자”들은 안으로 숨어든다. 나는 진짜여서 안으로 숨어야 했다. 밖은 가짜들의 포탄이 날아드니까.  


하지만 진짜의 그 안도 그리 안전하지는 못했다.

그 안은 몇 마리의 양들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밤.

그 안은 손 하나 움직이기 싫은 무기력의 아지랑이.

그 안은 셈도 안될 만큼 흐트러진 머릿속.

그 안은 마르고 말라 갈라진 눈물샘.


나는 안팎으로 작은 탑들을 쌓고 있었다. 밖으로는 증명을 위한 탑을. 안으로는 합리화를 위한 탑을.

나은 선택을 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이 아닌 일본, 간호사가 아닌 학생, 귀국이 아니라 결혼

안으로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옳을 테니까. 


그렇게 안팎으로 쌓은 작은 탑들이 견고할리 없다. 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향수병에 시달렸다. 일본에서 학생이 되었다. 또래 한국 친구들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보였다. 불안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흔들리는 정도였다. 


일본에서 결혼했지만 외로웠다. 지독하게. 지독하게. 지독하게. 결혼의 다른 이름을 외로움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외로움과 우울은 늘 가까이 맞닿아 있어서 외로움이 손을 뻗으면 우울은 그 손을 덥석 잡는다. 외로움과 손을 잡은 우울은 흔들리던 나의 작은 탑들을 손쉽게 무너뜨렸다. 나는 다시 탑을 쌓아 올리지 못하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학생에서 간호사가 되었고 결혼했다 이혼했다. 


무너진 탑의 잔해를 속에서도 나는 내가 "진짜"임을 몰랐다.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고 싶고 나서야 바다에 빠져 버리고 싶고 나서야 줄에 목을 매고 싶고 나서야 내가 “진짜”임을 알았다. 

그래서 "진짜"임을 알아서 고치려고 정신과를 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진짜"인 알겠는데 당장 죽을 용기는 없어서 정신과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의사에게는 잠 좀 자게 해달라고 했지만 정말은 늦게 죽기 위해 약이 필요했다. 바로 죽을 각오까지는 안되어 있어서 죽는 걸 조금 미루고 싶었다. 각오가 설 때까지 그때까지는 살아야 해서 정신과를 갔다. 


그때 내가 받았던 약들. 수면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 모두 늦게 죽기 위한 이었다.

그때 서서히 천천히 느리게 죽으려고 먹었던 약들이 나를 살렸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서서히 천천히 느리게 살아진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힘들어서 죽을 같다면 정신과 문을 두드려라. 


나는 그렇게 두드려서 열었고 열어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았다. 그건 이뤄지지 않아도 되는 꿈, 나누고 싶은 사랑, 누리고 싶은 행복.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걷힌 후 깨달은 새로운 사실은 

그건 눈부시다는 것이다. 삶이 이토록도.

그건 찬란하다는 것이다. 삶이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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