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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Jul 14. 2023

뭐든 걸 뒤로 하고 떠날 수 있나요

[달과 6펜스_서머싯 몸]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 <달과 6펜스>를 독서 모임에서 읽으며 가장 와닿았던 것은 내용이나 인물보다 한 질문이었다. 책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처럼 처자식 다 버리고 갑자기 떠나버리는 거 말고 경제적으로 상황적으로 내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다 갖춰진다면 훌쩍 떠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이 이토록 도전적인 질문이 될 줄은 몰랐다. 학생이었으면 당연히 떠났을 것이고 실제로 학생 때는 앞뒤 생각 안 하고 떠났다.(물론 부모님의 큰 지원으로 떠밀리듯 간 거긴 하지만 나에게도 용기는 필요했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는 엄마라는 자리에서 열정을 펼치기 위해 떠난다는 것은 보통 결심이 아니면 힘들 것이다. 다 데리고 떠나면 몰라도.


이렇게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스트릭랜드의 행동은 도발적이다 못해 미친 짓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한 질문이, 대답하기도 힘든 이 질문이 나를 설레게 하고 자유를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이 느낌은 뭐지? 뭐든 걸 뒤로 하고 떠난다는 이 상상이 현실에서는 고뇌의 연속일 수도 있는 일이 굉장한 자유를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자신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은 스트릭랜드는 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떨쳐내기 어려운 책임감, 안정적인 생활, 세속적인 삶을 그는 모두 떨쳐버린다. 아니 자기 운명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듯이 담담히 혼자가 된다.


안주하는 삶, 습관적인 삶이 과연 창조적인 활동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변화를 주기가 힘든 건 사실일 것이다. 습관적으로 살면서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분명 있을 테지만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두 번째 나를 설레게 하는 질문은 내가 던진 질문이다. 낯선 나라 혹은 낯선 장소에 가서 고향에 온듯한 편안함을 느껴 눌러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고갱이 타히티에 가서 현지인처럼 살았듯이 책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란 인물도 좋은 직장과 직책을 뒤로하고 휴가로 간 장소에 눌러앉아 버렸다는 내용에서도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무엇인가 가슴을 뒤트는 것 같더니 돌연 어떤 환희의 느낌, 벅찬 자유의 느낌이 가득 차오르더라는 것이었다. 내 집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낀 그는 그 자리에서 단 한순간에, 나머지 인생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보내겠노라고 결심하고 말았다고 했다.


대부분 자유를 느꼈다는 장소는 공통점이 있긴 하다. 날씨가 따뜻해 많은 옷을 걸치지 않아도 되는 토속적인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그런 장소에서 사람들은 특히 서양인들은 인간 태초의 편안함을 느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든 걸 내려놓고 정말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본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문명사회라는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이런 책을 만났을 때 꿈틀대는 본능과 설렘으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순전히 본인의 선택이기에 적어도 남의 눈치, 남의 생각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머싯 몸이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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