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네? 맛있어용!
며칠 전, 오랜만에 용가리 너겟을 먹었습니다. 치킨을 시키려다 2만 원이 넘는 가격에 놀라 멈칫했고, 한 마리를 다 먹고 나면 불편한 속과 늘어난 체중에 또 놀랄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냉동 치킨이나 치킨 너겟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왜 치킨은 항상 밥 다 먹고 슬슬 잘 준비를 할 때가 되면 땡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주일에 1-2번 밤 10시가 되면 쿠팡과 컬리 앱을 오가며 일주일 치 식량을 쟁여 둡니다.
그때 눈에 띈 한 녀석. '용가리'.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있던 아이였습니다.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가면 냉동고 속 귀여운 공룡이 그려진 패키지가 저를 반기곤 했습니다. 가끔은 작은 장난감도 들어있었지요. 제 또래 친구들은 여러모로 좋아라 하는 반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맞벌이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은 방학 때 시작됩니다. 학기 중에는 점심을 급식으로 먹었지만 방학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시니 매번 점심을 챙겨주실 수 없었고, 제가 불을 사용해서 요리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죠. 그렇다고 지금처럼 즉석식품 같은 게 잘 나오지도 않았고요.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는 카레나 짜장 혹은 기름에 튀겨서 잘 상하지 않는 음식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치킨 너겟이나 돈까스 같은 것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식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제게 눅눅해진 치킨 너겟이나 돈가스는 저주였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더 눅눅할뿐더러 전자레인지로 가열된 인위적인 뜨거움은 더할 나위 없이 싫었습니다. 그래도 배고픔 앞에 장사 있나요. 어쩔 수 없이 먹기는 했습니다만 그 기억이 쌓이고 쌓여 '용가리 IS 맛없다' 는 게 올바른 편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 쿠팡에서 용가리 너겟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보다 의아함이 컸던 이유는 아마 그래 서였을 겁니다. '이게 아직도 살아남았네?'. 하지만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치킨 너겟이 없었고 어린 시절의 추억에 이끌려 용가리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갑자기 치킨이 생각나는 밤, 용가리 5마리는 에어프라이어에 들어갔습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열어본 에어프라이어, 그 안에는 운석을 맞은 듯 지글지글 끓고 있는 공룡이 있었습니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갓 튀긴 음식은 맛없기도 힘들긴 합니다만 저는 오랫동안 편견에 갇혀 살고 있었던 겁니다.
INFP의 농도가 99%인 저는 용가리 대가리 한 입에 어린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마 시식코너 아주머니의 말에 이끌려 용가리를 사셨을 지도, 아들이 좋아하는 공룡 일러스트에 사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바로 챙겨주지는 못하더라도 자식들이 점심을 맛있게 먹길 바라는 마음에 아침마다 튀겨 놓으셨겠지요. 매일 아침 불 앞에서 요리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찮은 일인지는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의 나이는 지금의 저와 비슷했을 겁니다. 어머니도 강하고 뚝심 있는 사람이기보다, 자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가야 했던 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준비하시던 점심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자식을 향한 사랑과 배려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식은 용가리와 눅눅한 돈까스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실 제가 어렸을 때 먹은 음식의 90% 이상은 다 따뜻하고 갓 지은 음식이었습니다. 그 음식들을 덕분에 큰 병치레 없이, 무사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잘 컸습니다.
이제는 용가리 너겟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감정을 느끼고 글을 쓰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배려와 사랑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