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와 라즈베리에 환장하는 이야기
저는 라즈베리 덕후입니다. “라즈베리”가 들어간 과자, 잼, 혹은 바디워시가 눈에 보이면 본능적으로 결제를 하게 됩니다. 냉장고에는 브랜드별 라즈베리 잼이 3개 구비가 되어있고(샹달프, 다보, 오뚜기) 샤워 부스에는 라즈베리 풍선껌 향이 가득 나는 바디워시도 하나 있지요. 아아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 라즈베리 음료가 있다면 계획은 언제든 변경 가능합니다.
라즈베리 덕후가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제 아버지 얘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제 아버지는 경상북도 영덕 출신이고, 자연에서 자라셨고, 자연에서 노는 걸 좋아하십니다. 다슬기를 줍는 소년이 되었다가, 붕어나 참돔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가, 버섯을 따오는 채집꾼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본 광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욕조 안에 수북이 쌓인 얼음과 큰 참치 한 마리였습니다. 바다낚시에 가서 참치를 낚아오셨고 그걸 냉동해 몇 달 내내 드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물고기를 낚아오는 날엔 우리 집에는 항상 아버지 친구들로 북적였습니다. 물고기를 자랑하고 싶으셨던 건지, 술이 마시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항상 친구들을 초대해 만찬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친구들은 우리 집에 오면서 항상 과자나 음료수 같은 걸 동네 슈퍼에서 사 오셨습니다. 아마도 좋은 물고기와 술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고, 집 안을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한 사죄였을 것이며, 음식을 준비해 주시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사 오는 과자는 제 취향에 맞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일명 '따조'가 들어가 있는 짭짤한 치토스 혹은 달콤한 초콜릿 가득한 빈츠 같은 것들을 좋아하던 제게 국화샌드 혹은 버터링 같은 과자는 살짝 촌스럽고 투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늘 오던 아저씨 손에는 보지 못했던 과자 박스가 들려 있었습니다. 정체는 바로 "후레시 베리". 지금과는 다르게 녹색이 주요 색상이었습니다. 파삭- 파열음을 내며 부서지는 과자만 먹었던 제게 후레시 베리는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잇몸으로도 부서질 만큼 부드러운 빵 안에는 새콤한 듯 달콤한 필링이 들어있었죠. 그게 얼마나 맛있었던지 12개를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고 말았습니다. 12개를 야금야금 까먹으며 ‘여기에 대체 뭐가 들어가 있길래’라는 생각으로 패키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에 띈 세 글자, ‘산딸기’. 그냥 딸기도 아니고 산딸기! 이렇게 맛있는 이유는 산딸기가 들어갔기 때문이구나! [ 산딸기 IS 정말 맛있어 ]라는 공식이 제 머릿속에 각인되는 순간이었고, 제가 라즈베리에 입덕하게 된 강렬한 입학식이었습니다. 그 뒤로 산딸기가 영어로는 'RASPBERRY'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산딸기에 대한 긍정적 감정은 라즈베리에 그대로 옮겨졌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산딸기와 라즈베리는 다릅니다.)
후레시 베리는 여전히 맛있고 달콤하고 강렬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부모님의 시간은 많이 흘러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예전만큼 어디론가 떠나시지 않게 되었고, 그의 친구들이 우리 집을 찾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지고 고독해지며 낡아버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시끌벅적하고 활기찼던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그 활기찼던 공기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제 시간이 더 많이 흘렀을 때, 제가 지금의 부모님의 나이가 되었을 때 말이죠. 그때도 저는 라즈베리나 산딸기 혹은 후레시 베리를 좋아하고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50대가 되어서도 10살 때 먹었던 그 달콤함을 기억하는, 그런 설렘 가득한 어른으로 늙고 싶습니다.
라즈베리 덕후로써 라즈베리 잼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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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darbo가 아닙니다. 70% 함량이라고 적힌 걸 사셔야 후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