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1일차
이나리 산을 오르며 수천 개의 도리이를 지나가는 게 첫째날 계획의 전부입니다. 선선하던 가을은 낮이 되자순식간에 여름이 되었습니다
빨간 도리이 사이를 묵묵히 오르던 중,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아마 서로 '혼자 온 여행객'임을 눈치챘겠죠.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주었고, 간신히 기념사진을 남겼지만 어색함이 가득했습니다.
내려가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눴습니다. 그는 주식 트레이더 ‘비슷한’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주식에 관심 있는 저는 궁금한 점을 쏟아냈습니다. 최근 시장 상황, AI의 미래 같은 질문들이었죠. 그는 몇 가지 시나리오와 함께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비밀이라며 피하는 질문도 있었지만요.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견해일 뿐이라는 얘기도 빼먹지 않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be liquid."
주식 차트의 빨간색과 파란색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가라는 뜻일겁니다. 10년 혹은 더 길게 보면 결국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조심히 덧붙입니다.
종교는 없지만, 절대적 존재에 대해 가끔 생각합니다. 그가 우연히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서른이 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뭔가가 당장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듭니다. 제가 10시간 고민한 아이디어가 팀장님의 1시간 생각에 밀릴 때 좌절하기도 합니다. 아이디어를 날카롭게 만드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도 말이죠. 그 시간이 아직 저에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매수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수익을 내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그러니 하나하나에 너무 아파하지 않기로, 자책하지 않기로 다짐해봅니다.
많은 걸 비우고자 했던 여행에서, 뜻밖의 인연과 깨달음을 채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