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유서를 쓰다

매일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기

by 느루숨

글쓰기 수업에서 유서를 써서 제출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순간 당황했다. 살아 있는 내가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는 글을 써야 한다니 낯설고 어색했다. 내가 죽음을 가정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유서를 써 내려가면서 나는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다.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삶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만 예순일곱의 나이, 그동안 수많은 부고를 접했다. 친구, 동료, 친척들까지, 이제 신문의 부고란에서 나와 같은 또래의 이름을 자주 마주한다.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올 것이다. 하지만 막상 유서를 쓰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온 날들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이 실감 났던 때는 언제였을까? 부모님을 떠나보낼 때였을까,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였을까. 그 순간에는 제대로 된 감정이 따라가지 않았다. 그저 멍한 상태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부고 소식이 빈번해지면서 죽음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성당에서 위령미사에 참예할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죽음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 보니 이렇게 될 줄 알았어"가 나의 이야기가 될까 두려웠다. 살아온 흔적이 덧없이 사라질까 봐, 사랑하는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점차 희미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막상 유서를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단 한 글자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삶을 정리하는 일이 이렇게나 벅찬 줄 몰랐다. 무엇을 남겨야 하고,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 유서를 쓰면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잘 살아왔는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유서를 쓰면서 두려움과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평온함도 느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더욱 명확히 바라보게 되었다. 남은 날들이 더 소중해졌고, 아직도 해야 할 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말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아무리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언제 어떻게 떠날지 알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우리는 자주 '언젠가'를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표현해야 할 마음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글쓰기 수업에서 유서를 쓰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처음에는 그저 학습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이것이 단순한 글쓰기 연습이 아닌 삶을 성찰하는 중요한 기회임을 깨달았다. 자판에 손을 올려 유서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삶의 모든 순간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살아오면서 미뤄둔 일들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은 가족 모임들, 언젠가는 가보겠다고 미뤄왔던 여행지들. 이런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삶은 결국 우리가 맺은 관계와 경험한 순간들의 총합임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시간을 더 깊게 음미하며,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감사하며 살아 가려한다. 매일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되, 그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향한 새로운 다짐이 되기를 바란다. 약 사십 년 동안 일터에서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왔지만, 이제 또 다른 시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남은 날들을 의미 있게 채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이모작이 아닐까

이제부터는 미뤄둔 사랑을 표현하고, 소중한 인연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하고 싶었던 일들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식이 될 것이다. 지금 쓰려는 유서는 단지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다짐의 글과 같다. 나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열정과 희망을 간직한 채, 주어진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더 많은 의미를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시작된 이 과제는 내게 삶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셨을 때, 나는 이것이 이토록 심오한 자기 성찰의 여정이 될 줄 몰랐다. 유서를 쓰면서 나는 내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되었고, 아직 쓰이지 않은 장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우리 삶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영원하다면, 아무것도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순간들이 더욱 빛나는지도 모른다. 이 유서 쓰기 과제는 내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이 유서를 '내가 남길 기도'라 부르고자 한다.

"주님, 제가 떠날 때, 세상에 따뜻한 흔적을 남기게 하소서. 살아가는 동안 사랑을 아끼지 않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두려움이 아닌 감사로 채우게 하소서. 나를 스쳐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온유하고 너그러운 흔적으로 남게 하소서. 그리고 훗날, 세상 먼 길 떠나는 날 후회보다 평온함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나는 이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매일의 삶을 더 깊이 음미하고자 한다. 매일을 마지막인 것처럼 두려움 없이, 충만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일기를 쓰듯 하루하루의 유서를 새로 쓰고 지우면서, 매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유서 과제를 제출한 후에도, 이 경험은 내 마음에 깊이 남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수업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을 구성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유서를 쓰는 과정은 내게 삶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의미 있게, 더 사랑하며, 더 깊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겠다. 유서를 쓰며 배운 이 소중한 교훈을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글쓰기 과제가 내게 준 진정한 선물이다. 하루하루가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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