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나라는 존재와 타인의 무게감
나는 어떤 짐을 지고 살았는가?
나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즐겁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없는가?
상처를 주는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살지만 특히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인색하다. 요즘 심리학 책부터 인문학 책까지 많은 책들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그 이전에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자기 성찰 모든 인문적 성찰은 역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칠레의 시인이 쓴 "질문의 책"을 살펴보면 모두 물음표를 달고 질문으로부터 시가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이라는 주제 그리고 나라는 주제에 대해서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자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어렵기도 하고 어떻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 수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이라는 학문과 철학자의 사상을 통해 그들의 텍스트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아주 쉽게 풀어보려고 한다.
나라는 존재를 좀 더 가까이 이해해 보려면 우리는 주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여러 매체나 책 등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니체의 개념을 통해 주체라는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해 보도록 하자.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보면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라는 챕터가 나온다 거기에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정신의 삼단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삼단계가 주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쉽게 풀어보고 나는 어떤 단계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니체는 낙타의 단계를 이렇게 말한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깨나 지는 정신에게는 참고 견뎌내야 할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라고 표현을 한다. 현재를 예로 든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누군가가 지고 있어야 할 짐을 본인(나)이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고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본인의 선택이든 타인에 의해서든 이 낙타의 단계는 기꺼이 짐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안에 자신의 주체성은 뒤로 밀어 넣은 채 희생을 앞으로 꺼내놓은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짐 깨나지는 정신은 더없이 무거운 짐을 모두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는 짐도 본인 것이라고 착각하며 그 짐을 지고 사막으로 힘차게 걸어간다. 우리는 이 낙타의 짐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낙타의 구절을 읽고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마땅히 짐을 짊어지는 사람인가? 사회가 원하는 삶,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무언가를 쫒는 것, 자신은 지워버린 채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살려고만 하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다음 단계의 사자로 나아갈 수 있다.
니체는 두 번째 단계인 사자의 단계를 "새로운 가치의 창조, 사자라도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사자의 단계는 용맹하고 용기 있고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강하다. 즉 사자의 단계는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권리를 위해서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짐깨나 지는 그리고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정신인 낙타의 존재에게는 더없이 대단한 소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체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삶에는 자신이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것을 사자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해낸다. 타인의 시선이 아직도 불편한가?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자꾸만 거슬리는 무언가에 내 권리를 잃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적어도 나는 자신의 주체를 찾고자 할 때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권리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타인을 만날 때 그리고 어떤 종류의 감정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이 불러일으켜지는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타인의 감정에 쉽게 흔들리거나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면 마땅히 자신의 권리를 한 개쯤은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신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실마리이자 단서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단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세 번째 단계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어린아이는 순진 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건 사고를 겪는다. 낙타의 단계는 그 짐 때문에 자기 삶에서 어려운 것들과 고민까지도 내려놓지 못하고 다 짊어진다. 심지어 타인의 고통이나 고민까지도 본인이 짊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자의 단계에서도 용맹하게 싸우며 쟁취하지만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긍정이다. 어린아이의 단계는 바로 긍정을 이야기한다. 어린아이의 순수와 망각이라는 것은 실제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 어린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할 때 활기차게 웃으며 항상 순수함을 가지고 놀이에 임한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혼날 때 그때는 슬프지만 그것이 며칠씩 어린아이의 머릿속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놀이에 몰입하며 사건 사고를 쉽게 망각한다. 그렇기에 어떤 일을 할 때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해야 하며, 어떤 근심이 있을 때 어린아이처럼 쉽게 망각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그리고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보며 어떤 단계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꺼이 짐을 짊어지는 낙타?? 아니면 용감하게 자유에 대한 권리를 쟁취하려는 사자?? 아니면 순진무구의 망각의 존재 어린아이?? 어떤 사람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낙타이기도 하고 사자이기도 하며 어린아이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맞추며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체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에 맞게 자신을 지운 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지우면서 살고 있는 것, 그것은 자신의 자존감과 연관이 깊다. 자존감 그것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일,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자신의 감정의 결을 잘 알아차리는 방법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고 있을 때 복합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자존감의 정의나 자존감을 향상하는 방법 등의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런 류의 자존감 수업은 너무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존감을 기르는 스킬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사랑할 때 스스로 흘러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주체적으로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