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도 괜찮아
강아지 번역가로서 정체성을 찾고 보니 다음 샘플 테스트에서 떨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내 문체를 알고 내가 어떤 스타일의 번역가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뜻은 내가 어떤 책과 어울리는지도 안다는 뜻이다.
샘플 테스트에서 떨어져도 나답게 써서 떨어진 거니까, 살짝 속이야 상하겠지만 나와 맞지 않는 책이었나보다 하고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고유의 문체, 담백하고 간결하면서도 감정이 묻어나는 문체를 잃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번역문을 사랑한다. 이제 나는 진짜 출발대 앞에 섰다. 앞으로 강아지 번역가로 커가기 위해 나에게 걸맞은 노력과 성장을 해나갈 뿐이다.
예전에는 번역 연습을 할 때, 이미 출간된 번역서를 보면서 내가 무얼 고쳐야 할까를 고민했다. 물론 그게 헛수고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도리어 내가 무얼 잃어버렸는지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저렇게 번역해야지가 아니라 내가 한 번역문과 저 번역문이 어떻게 다른지를 견주어 보면서 내가 어떤 스타일로 번역하는지를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내 번역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만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떤 번역문이 더 우월한지 아닌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면에서 빛을 발하는 번역문 중에서 나는 이런 번역문을 써내는 번역가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각자 고유의 빛을 지니고 있다. 다만 내 고유의 빛이 어떤 빛깔인지를 알면 자신감이 생기고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내가 내 번역문을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면 혹시나 외면받더라도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을 낼 수 있다. 내가 나를 아니까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지 내가 아니까 괜찮은 것이다.
나는 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번역문 한 줄을 완성하기 위해 내 영혼이 울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