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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Sep 21. 2020

놀지 못하는 사람

  순희 씨는 미싱사다. 그리고 순희 씨는 객공(客工)이다. 순희 씨는 36년 차 미싱사고, 12년 차 객공이다. 이 둘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객공은 미싱사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편할 테다. 객공으로 일하기 전 순희 씨는 봉제 공장에 소속된 채로 (소속이라고 하지만 고용보험 가입이나 퇴직금은 보장되지 않은 비정규직이다) 월급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객공이 된 이후론 다르다. 공장에 출근하는 건 같지만, 더 이상 순희 씨는 월급의 개념이 아닌 자신이 작업한 만큼의 돈을 받는다. 공장에서는 옷의 생산에 필요한 재료와 시설을 제공하고 순희 씨는 그곳에서 기본급 없이 만든 옷의 수량에 따라 돈을 받는다. 공장과의 수익은 5:5. 운이 좋으면 6:4로 나눈다.


  순희 씨의 노동 역사는 유구하다. 나는 가끔 소파에 누워서, 저녁밥을 먹다가, 뜨개질하다가 순희 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밭에서 김을 매고 소의 밥을 주느라,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도 제대로 가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순희 씨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열여섯에 친구를 따라 고향에서 서울로 상경한 순희 씨는 당장 일을 해야 했다. 그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일이었다. 순희 씨는 약 이 년간 시다 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미싱을 배웠다. 서러운 일도 많았다고 했다. 잠깐 미싱사가 자리를 뜬 자리에 한 번 앉았다가 욕을 먹기 일쑤였고 가끔은 쪽가위 같은 것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순희 씨는 그렇게 일을 하며 자신을, 어린 동생들을, 나와 남동생을 먹이고 입히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순희 씨는 통 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순희 씨는 그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제발 순희 씨가 카페에서 음료를 들이켜는 게 아니라 그곳의 분위기와 맛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여행을 갈 땐 어느 곳을 들를지 계획을 짜며 기대하고 신나길 바랐다. 맛집에선 사진을 찍거나 최고다, 보기보다 별로다 등등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줬으면 싶었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무심한 표정보다는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기를 바랐다. 하지만 순희 씨는 늘 빠르고 무덤덤하게 자신의 휴일을 보낸다. 보통은 소파에 누워있다가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옷과 침구 정리를 하고, 반찬을 만들며 집안일을 해결하기 바쁘다.


  미싱을 돌릴 때의 순희 씨의 모습은 어떨까. 공장에서도 그녀는 누구보다 민첩하고 빠르게 작업에 매진한다. 일감이 도착하면 그녀는 거침없이 재단된 옷의 부분들을 꺼내보며 시간과 작업량을 계산한다. 1초라도 아끼며 좀 더 빠르게 작업할 수 있도록 옷감을 나열한다. 그리고 나에게 줄 일감과 자신의 일감을 분리한다. 아직 미싱이 서툴고 옷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 용어를 알려주며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일러주는 것도 그녀의 일 중 하나다. 나는 그녀를 따라서 열심히 미싱을 돌리고 다림질을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유구한 역사가 낳은 속도였다.


  어느 날, 내가 어릴 때부터 모아 온 사진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들여다본 적이 있다. 사진첩 속에는 갓난아이 때의 나와 어린이집을 다닐 때의 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사진이 나란히 누워있다. 그 이후의 사진은 없다. 곧이어 남동생의 어릴 적 사진과 어린이집을 다닐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의 사진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끝이 나 있다. 둘을 합쳐 대략 10년의 역사다. 바쁜 아빠 대신 빼기 힘든 시간을 내어 우리의 행사를 따라나서던 순희 씨의 모습이 기억난다. 놀이공원이나 눈썰매장을 갔을 때, 가족끼리 캠핑을 갔을 때, 눈이 오는 설원에서의 사진을 보며 나의 어린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뒤나 옆에 서 있는 순희 씨의 앳된 얼굴을 쳐다본다. 사진첩에서 그동안 내가 찾고 싶었던 순희 씨의 웃는 얼굴이 등장한다.


  순희 씨는 자신을 종종 못생겼다고 표현했다. 순희 씨의 어릴 때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는 표정이 많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얼굴은 못난 부분이 없고 웃는 얼굴은 누구보다 빛이 난다. 가끔 깔깔 소리를 내며 웃는 것 또한 그렇다. 나는 사진첩에서 초등학생 때의 내 역사 뒤로 없어진 나의 20년을, 동생의 15년을 가늠해본다. 우리는 아마 그녀의 품보다는 또래 친구와 노는 게 더 재미있고, 순희 씨에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짜증을 내거나 예민해지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문득 내가 순희 씨의 얼굴에서 웃음과 생기를 빼앗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종종 나는 순희 씨와 함께 반려견 까미의 산책을 돈다. 코스는 두 개 정도로 정해져 있고 둘 다 3, 40분 내외의 거리다. 반복적으로 코스를 돌다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어느 날은 까미를 볼 때의 나의 표정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무표정은 순희 씨의 얼굴을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까미를 바라볼 때의 나의 표정은 다르다고, 부모님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내가 자식을 낳아보진 않았지만….”

  “까미는 그냥 개야.”

  “아니야, 까미는 나한테 자식과도 같아. 그 마음이 어떤지 알겠어?”

  “나도 알아.”

  “뭐를.”

  “나는 너희 어렸을 때,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어.”


  그 이야기를 나는 들으며 끼고 있던 팔짱을 푼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에 대한 속단을 멈추기로 한다. 순희 씨의 노동 역사는 길고 깊지만 나는 더 이상 순희 씨를 놀지 못하는 사람으로, 웃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의 엄마인 여자로만 기억하지 않기로 한다. 하늘 가득 구름이 끼어 달이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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