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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Oct 28. 2020

숙면 못하는 사람

  오래도록 시달린 악몽이 있다. 주위에 하도 떠벌리고 다녀서 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자주 꾸는 악몽이 있다.


  그 꿈은 넓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사람들과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나도 분위기를 즐기며 밥을 먹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둘러싸고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이 사실은 나와 싸워서 사이가 틀어진 사람들, 나와 연을 끊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 사람들은 서로를 알든 모르든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하는데, 단순히 얼굴 보기 껄끄러운 사람들이 한가득 나오는 꿈이라서 악몽이 아니라 나랑 분명 안 좋게 헤어진 사람들인데, 그들이 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걸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몽이다. 꿈속에서 나는 너무 당황해서 한참을 어쩔 줄 몰라하다가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보통 그 옆 사람은 나랑 친하게 지냈던 동기다.


  “내가 너랑 이렇게 밥을 먹어도 돼?”


  나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우리가 이래도 되는 사이야?”


  나는 말을 내뱉자마자 비참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 이 꿈이구나’ 자각한다. 또다시 이 꿈속이구나, 하고.


  어릴 때부터 지독하게 날 따라다닌 불면은 그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알게 했다. 그래서 보호병동에 입원했을 때도 나는 나아질 것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잠 못 드는 날은, 악몽을 꾸고 그 악몽을 곱씹는 날은 언제고 계속될 테니까. 나는 결코 숙면하는 밤을 찾지 못할 것이다. 입원과 동시에 주치의의 처방엔 꼭 수면제가 들어갔다.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부터 바로 잡아야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부터 약 기운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시집을 받아 든 것은 퇴원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남들에게 사실은 없어진 한 달 동안 나는 보호병동에 입원했었다고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직접 적은 카드를 줬고 누군가는 꽃을, 누군가는 밥과 술을 사줬다. 조금 더 오래 버텨보자고 누군가 시집을 건넨 것도 그즈음이었는데, ‘널 생각하며 샀어’라는 말을 듣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곧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사람이 날 위해 골라준 이야기들을 받았고, 책을 소장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읽는 것은 즐기지 않아 한동안은 그 시집을 책장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하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곧 나를 찾아왔다. 어쩌다 잠이 들면 큰 홀에서 식사하는 꿈이 유난히 날 괴롭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전 음악을 듣거나 책이라도 꺼내 읽어야 할 만큼 간절해졌다. 분명 약을 먹는데도 선잠이 들어 새벽마다 두세 번씩 깨었다가 다시 잠들 때가 많았다.


  “이 시집을 읽을 때마다 네가 상상해봤으면 좋겠어.”


  수면등을 켜자 딸깍 소리가 났다. 책을 건네주던 지인의 진지한 목소리가 딸깍 떠올랐다. 그녀가 유독 추운 날씨에 빨갛게 된 나의 손을 잡아주며 말하기에 그 말이 조금 더 진지하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등장하는 식물원을 생각하면, 네가 마냥 죽고 싶어 하진 않을 거 같아.”


  건네받은 시집의 표지에는 알 수 없는 식물이 키가 크게 자라 있었고, 서문을 읽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식물원에 입장한 기분이 들었다. 상상해보라는 그녀의 말은 사실 필요 없었다. 시집을 펼치자 이야기가 쏟아졌고, 그 이야기들은 그녀가 날 위해 골라준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잘못 내린 지하철역에서 순순히 집으로 돌아간 까닭은 지인에게 선물 받은 그 시집과 같은 시집을 어떤 젊은 여자가 갖고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을 우연히 봤기 때문이다. 여자는 시집을 가방 안에 넣으며 유유히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여자의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그 순간 나에게는 엄청난 바람 같은 것이 불어닥쳤다. 언젠가 건네받았던 카드 속 글귀와 꽃, 밥과 술이 차례로 내 몸을 다시 스쳐 지나갔다. 따듯하게 내 손을 감아오는 온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집에서 읽었던 글자들이 튀어 올랐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나눴던 대화가 다시 재생됐다. 엄마의 걱정 어린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 나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엔 난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그것을 갚기 전까진 아무 데도, 그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꿈을 꿀 때마다 말이야.”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무심코 악몽에 관해 이야기하며 괴로워하니 마주 앉아있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식탁 밑에 숨어서 언니를 놀리려고 기다린다고 생각해봐.”


  나는 말없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였다.


  “그 밑에 숨어서 킬킬대면서 언니가 놀랄 걸 기다린다고 상상하면, 그럼 좀 낫지 않아?”


  나는 곧이어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러면 웃음이나 혹은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으므로. 타인의 다정함이 불쑥 날 치고 달아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알고 있다. 악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또 안다. 그 악몽을 킬킬거릴 수 있는 꿈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여전히 그 큰 홀에서 나와 싸운 사람들과 만나며 식사를 하는 꿈을 꾸지만, 이젠 더 이상 꿈에서 깨어나도 외롭거나 엎드려 울지 않았다.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같았던 악몽을 깰 수 있게 해준 손길 혹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누군가 건넨 시집과 그 속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불면 대신 이름 모를 식물원의 모습을 오래오래 곱씹으며. 차마 만질 수 없는, 나에게 건네준 그 마음의 모양을 상상하며. 나는 혹시라도 맞이할 숙면의 밤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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