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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Oct 31. 2020

천천히 걷지 못하는 사람

  공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매번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식사를 마치자마자 미싱에 달려가듯 앉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급하지? 객공 생활이라는 게 시간이 금이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엄마처럼 지독한 워커홀릭이 또 있을까 싶은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일할 때 배가 부르면 일하기가 힘들다고 하며 공장 식구 중 가장 밥을 적게 덜어 먹었다. 사모님이 종종 간식을 챙겨줄 때도 있었지만 엄마는 그것도 잘 집어먹지 않고 옷을 완성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면 왠지 그녀가 너무나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게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왜냐면 엄마는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북천엔 어느새 부화한 새끼오리와 어미 오리가 함께 헤엄을 치고 있었다. 어두운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털이 윤기 있어 보였다. 그들의 등장을 나는 매번 엄마를 통해 알았다. 엄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엄마와 이모들 말고도 몇 명의 사람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후 6시 칼퇴근을 했지만, 엄마와 이모들은 밤 10시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퇴근 같은 경우엔 많은 날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과 함께 퇴근하지 못하는 것을 크게 아쉬워하진 않았다. 온종일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나로서는 자꾸 늦어지는 퇴근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새끼 오리다! 저게 다 몇 마리야?”

  “엄마, 가자.”

  “이 꽃 좀 봐. 새로 다 심었나 봐.”

  “엄마, 가자니까.”


  엄마와 이모들은 성북천을 걸으며 이것저것에 정신이 빠져있기 바빴다. 엄마는 오리를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듯 소리쳤고, 길가에 심어진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을 바라보며 나에게 어떤 게 가장 예쁘냐고 묻기도 했다. 걸음이 느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엔 공장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분꽃 화분을 쳐다보며 엄마는 천진한 목소리로,


  “떨어진 씨앗 가져가서 심을까?”


  말하기도 했다. 처음엔 나도 엄마에게 일일이 반응했지만, 곧 그 걸음 속도가 못마땅해서 엄마에게 말도 없이 저만치 떨어져 가곤 했다. 맨날 똑같은 풍경인데 봐서 뭘 한담. 나는 오리가 헤엄치고 사람들이 그것을 구경하고, 누군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꽃을 심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나의 말과 행동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어딘가 무용해 보이는 것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날도 쉴 틈 없이 일감을 밀어주는 엄마에게 나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랍빠로 끈을 빼고 고무줄을 잘라 그 끝을 미싱으로 박고, 완성된 소매를 뒤집느라 오전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엄마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나에게 일을 계속 시켰다. 나는 점점 조급해졌다. 아니다. 나는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했다. 비교적 간단한 일들만 도맡아 하는데도 나는 엄마의 작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허공에 손발을 휘젓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만 보고 내달렸고, 나는 간신히 엄마의 속도를 참아내며 따라갔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또다시 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생각이 나에게 오래 머무를까 봐 그게 무서웠다. 결국, 그날 나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공장을 도망치듯 나와야 했다.


  “너 오늘 꽤 잘하더라.”


  엄마가 얼굴에 로션을 바르며 이야기했다.


  “아냐. 나 하나도 못 했어.”

  “잘했다니까.”

  “아니야. 못했어. 그리고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해.”

  “안 중요한 게 어디 있어. 잘했어.”

  “그런 것도 있어.”


  이상하다. 엄마의 칭찬을 들으며 나는 이유 모를 서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엄마의 말들을 하나도 믿을 수 없어 속으로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공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다. 엄마는 곧잘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했지만, 그건 엄마가 쓸모없는 것에도 쉽게 눈길을 주고 사랑을 쏟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장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울고 싶어 질 것 같아서 될 수 있는 대로 편한 생각을 해보려고 했는데, 순간 그 이상한 성북천 풍경이 떠올랐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오늘도 새끼 오리 여섯 마리는 어미를 놓칠세라 분주히 발을 움직여 헤엄쳐 나간다. 길가의 노랗고 붉은 꽃들은 바람에 어지러이 흔들린다. 사람들은 여전히 맑은 하늘을, 부서지는 햇살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나는 성북천 어딘가에 서서 무용한 것들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엄마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빠른 퇴근길을 포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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