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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Nov 01. 2020

나는 지금도 미싱을 못한다

에필로그

  해가 지날수록 엄마는 못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할인을 받으려면, 이렇게 옆으로 넘긴 다음 바코드를 켜서 직원한테 주면 돼.”

  “어디? 다시 해봐.”

  “……다시 해볼 테니까 잘 봐.”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나조차도 그 속도를 따라가기 바쁘다. 이제 엄마 나이쯤 되면 못하고 모르는 게 많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엄마에게 친절하게 알려줄 때도 있지만 때론 ‘이것도 못 하냐’는 식으로 알려주기도 하는데, 엄마는 내가 어떻게 설명을 해줘도 미안해하며 나에게 다시 물어온다. 그래서 이다음엔 어떻게 한다고? 사실 나는 이런 엄마의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나의 머리가 점점 굵어지는 동안 엄마에게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엄마가 못하는 일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그냥 사람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못하는 게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난 어쩐지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쉬운 맞춤법을 틀릴 때, 적립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를 때, 노트북을 어떻게 켜고 끄는지 모를 때, 인터넷뱅킹을 하지 못해 여전히 텔레뱅킹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할 때, 대학병원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엄마 옆에 있었다.


  미싱을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넘었지만 나는 지금도 미싱을 못한다. 엄마는 이제야 내가 소질이 없다는 걸 인정한다. 내가 ‘난 소질이 없는 것 같아’, ‘그만두고 싶어’ 이야기해도 뭐든지 1년은 버텨봐야 한다고 버티던 엄마의 호기로운 문장은 내 앞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난 미싱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니라 단기간에 나오시(고쳐야 하는 옷) 없는 완성된 옷을 대량 생산해야 하는 객공(客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어쩜 저렇게 빠르고 날렵하게 옷을 만들고, 거래처로 내보내고, 돈을 버는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미싱을 돌리며 얻은 것들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약을 끊는 거 외에는 질문이 없던 내가 미싱을 돌리며 9 to 6 출퇴근을 하고 실을 찾고, 에리(옷깃)를 뒤집고, 다림질을 한다. 공장에서 ‘딸내미’라고 불리며 식사 준비를 하고 고칠 나오시를 정리한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몰랐던 일터에서의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자신이 못하는 것이 많아질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나에게 미싱을 배우는 일은 내가 못하는 것을 알아가는 설익은 과정이고, 또 그것은 외로운 일이다. 일을 끝내고 공장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에도 그런 외로움이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다시 엄마의 등을 그려본다. 나는 엄마의 질문에 더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다짐한다. 아마 어제도 다짐했고 오늘도 다짐하고 내일도 다짐할 것이다. 나는 미싱 말고도 잘하지 못하는 게 많으니 말이다.


  가끔 못하는 것 투성이인 엄마와 내가 서로의 곁에 존재함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답안을 낼 것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못하는 것’을 보듬는 기술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미싱을 돌리며 나는 어떤 과정에 놓여있는 일이 이렇게 벅차오르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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