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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Oct 29. 2020

페달 못 밟는 사람

  페달 밟기의 기억 하나.


  2017년 봄, 나는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평소 운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싫어하는 나는 과거 고등학교 졸업과 맞물려 운전면허를 따는 친구들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었다. 갑자기 면허를 따겠다고 결심한 것은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기보다는 단순히 운전을 배워두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학원의 직원은 나에게 수업료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해주며 지금 등록하겠냐고 두세 번 물었다. 생소한 과정에 이해 속도가 다소 느린 나는 뒤이어 그 말을 알아듣고 등록하겠다고 대답했다.


  (늘 그렇듯) 잘못된 선택이었다. 필기시험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것을 적용해서 운전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기능 시험은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공식을 외워 그럭저럭 통과했지만, 도로주행 연습을 하면서는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워졌다. 결국, 첫 도로주행 연습에 나선 지 1시간 30분 만에 (보통 2시간씩 연습한다) 나는 급히 학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어지러워서 그대로 한동안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다.


  페달 밟기의 기억 둘.


  2018년 늦여름이었다. 정신과 보호병동에서 퇴원한 뒤 주로 집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약을 먹어도 자살 충동이 가라앉지 않던 날엔 나는 당장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고 구직을 시작해보려고 했으나 그것들을 해내기엔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이것저것 기웃대다가 만난 것이 도예 수업이었다.


  마침 친한 언니가 도예를 전공해 수강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언니의 공방에서 흙을 빚으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마그넷과 컵, 그릇 등을 만들며 죽음보다는 생에 애착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흙을 바닥에 던지는 것부터 꼬막 밀기(도자기를 만들 때 흙에서 공기를 빼내 만지기 쉽도록 흙을 밀어내는 작업)까지 보고 배우며 나는 도예에 자신이 붙었다. 그리고 마지막 물레 수업 때 발견한 것이 바로 작은 플라스틱 페달이었다. 물레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살짝 밟아야 했던 그 물건은 귀엽게 생겼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금방 진땀을 흘리게 했다. 긴장한 나의 표정을 살피던 언니는 페달은 자신이 밟겠다고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흙덩이와 그것을 만지며 모양을 잡는 나의 엉거주춤한 자세 같은 것이 그 수업시간을 내내 메웠다. 신기하게도 언니는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때마다 적절한 속도로 물레를 돌려주었다.


  페달 밟기의 기억 셋.


  2019년 가을, 나는 보문동의 한 봉제 공장에서 세 번째 페달과 만났다. 미싱을 작동시키려면 페달을 밟기 전에 우선 자리에 앉는 것, 그리고 윗실과 밑실 끼우기를 배워야 한다. 윗실은 실을 풀어 기계에 순서대로 연결한 다음 바늘구멍에 밀어 넣으면 그만인데, 밑실은 보빈(bobbin)에 실을 감아 기계 안쪽에 있는 밑실 자리에 끼워 넣어야만 한다. 엄마는 손의 감각만으로 보빈이 꽂혀있는 자리를 잽싸게 찾아내 꺼냈다가 나에게 보여주고 다시 제자리에 끼웠다. 나는 그 동작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역시 페달을 밟는 것이 문제였다. 내 기억 속 페달들은 아주 예민해서 한번 밟아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그 속도를 조절하기가 엄청 힘들었다. 느리게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 연습하다 보면 곧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나는 그간 있었던 페달과 나 사이의 일들을 떠올리며 쉽게 고달파졌다. 나는 미싱을 배우기 시작한 후에도 몇 개월 동안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미싱을 밟았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내가 못하는 건 다 그런 이유라는 말이지.”


  세 번의 기억은 어느 봄, 여름, 가을을 순서대로 지나와 현재에 머물고 있다. 나는 여전히 선뜻 페달에 발을 올리지 못한다. 처음부터 나는 직감적으로 페달과 친해질 수 없음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잘 다룬다는 건 기계를 그만큼 잘 다룬다는 뜻이고 나는 여러 의미로 기계치다. 엄마의 시범은 언제나 신속하고 간결하고, 깔끔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속도 조절은 물론이고 페달을 움직이고 멈춰야 할 때도 잘 가늠하지 못했다. 미싱으로 옷감을 잘 박다가도 뜬금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실을 박는 실수를 했다. 아, 슬픈 일이다. 벌써 세 번째 반복되는 일인데 나는 나아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넌 연습 부족이야.”

  “아니야. 나도 연습해.”

  “아니잖아. 연습하기 싫어하잖아.”


  그것도 안 하면서 잘하고 싶은 건 욕심이야. 엄마는 일자 박기를 해야 할 때를 제외하곤 나에게 미싱에 앉히지 않는다. 밥을 먹으면서 하는 얘기라고 하기엔 독설 가득한 대화지만 난 이제 어느 정도 면역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엄마의 말은 날 바늘로 콕콕 찌르다 못해 내 옷감을 찢은 듯했다. 첫 시도부터 어그러진 페달과의 기억을 뒤집을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연습뿐이란 건 나도 아는 사실이다. 처음은 누구나 어설프고 어렵지만 이것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능력이고, 연습 말곤 뾰족한 수도 없고 더 빠른 수도 없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누구나 살면서 '페달' 같은 게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잘 하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어려우면서, 동시에 하기 싫은 일이.


  “그래도, 너 밑실도 못 끼우던 때가 있었지.”

  “지금은 잘하지?”

  “그것도 연습하니까 된 거지.”


  나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종이컵에 커피 물을 부었다. 싱겁게 탄 믹스커피를 마시며, 오늘도 나는 변명의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쉬운 일이 세상에 널려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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