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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Aug 31. 2020

믿지 못하는 사람

한낮의 점쟁이 둘

  중국 춘절 연휴에 더해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중국에서 들어오는 원단의 생산이 멈췄다. 보통 설 연휴가 지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고 하는데 의외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올해 겨울은 춥지 않아서 그런지 옷이 팔리지 않아 힘든 겨울이었다. 이즈음 나와 엄마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못했다. 힘겹게 결정을 내려도 또 다른 벽을 만나는 일은 너무 쉽구나 싶었다. 매서운 겨울이었다. 나는 며칠 내내 씁쓸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누구라도 붙잡고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점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 나는 엄마와 함께 점을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가끔 점을 보러 다닌다. 세례를 받기 전부터 종종 보아오던 것이 지금도 습관처럼 남아있다. 나는 속으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미래에 대한 조금의 조언이라도 들을까 싶어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나중엔 지인들 중 내가 제일 점집을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마침 엄마는 부적을 쓸 게 있다고 했다. 그 부적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함께 그 점집을 함께 찾아가기로 했다. 첫 번째 점집이었다.




  그곳의 할머니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엄마와 나는 소리를 질러가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야 했는데, 내가 앉자마자 그녀는 대뜸 왜 왔냐고 묻고 나보고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다. 결혼을 안 했다고 하자 왜 안 했냐고 물어와서 뭐 그런 걸 묻나 싶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괜히 진로에 대해 물어봤다가 혼이 나느라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서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엄마는 남동생의 생시를 얘기하고 오늘 부적을 쓰러 오라고 해서 왔다고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할머니는 무슨 부적이냐고 물어봤고 엄마와 내가 당황해서 얼버무리자 ‘그걸 알아야지!’ 하고 우리 모녀를 타박했다. 우리 말고도 구정 연휴가 막 지난 때라 점을 보러 오는 사람도, 부적을 쓸 사람도 많아서라고 할머니의 아들이 옆에서 멋쩍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기억할만한 정보를 천천히 제공했다. 결국 할머니는 동생의 사주팔자를 다시 풀어내야 했는데 어쩐지 지난번에 들었던 내용이랑 조금씩 달라서 믿음이 약간씩 깎였다.


  “얘는 작가고 미싱을 배우고 있어요.”


  남동생 이야기만 하면 되지, 불쑥 내 이야기도 꺼내기에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엄마를 봤다. 그러자 할머니가 천천히 내 얼굴을 뜯어보더니 글은 계속 써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아직 7밖에 낫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불쑥 나온 그 말에 ‘네? 뭐가요?’ 대답하니 할머니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나머지 3이 아직 남았으니 나에게 크게 마음 쓰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했다. 내 부적도 써 줄 테니 깔고 자는 요 밑에 넣어두라고도 덧붙였다. 남동생 부적에 원 플러스 원 느낌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나의 병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싶어 더 자세히 물어보려다가 그냥 말았다. 일단 목이 아팠다. 나는 부적을 그리는 할머니의 손끝 움직임을 바라보며 그 행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두 번째 점집은 엄마와 친한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집이었다. 그 점쟁이는 엄마와 같은 미싱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의 친한 아주머니는 워낙 자주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는 두 번째 점집에 믿음이 확 갔다. 어차피 일도 없겠다, 부적도 썼겠다, 이대로 아주 한꺼번에 일을 치우자고 생각한 나는 엄마와 그 길로 15분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그 점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점집에서는 확실하게 진로에 대해 묻기로 다짐했다. 지금처럼 글을 쓰고 미싱을 돌려도 되는 건지, 아니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제대로 구직을 해야 하는지 고민되어서였다. 엄마는 요즘 싸움이 잦은 아빠와 남동생에 대해서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점집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무서운 얼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마냥 웃는 얼굴의 아주머니였다. 믹스커피를 한 잔씩 받아 들고 우리는 신당에 들어가 방석 위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구슬로 꿰인 목걸이와 팔찌를 하고 엽전과 쌀알을 만지다가 부채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방울을 들었다. 아주머니가 도저히 따라 할 수도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살님, 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나는 어느 때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머니는 내 생시를 들여다보다가 잠깐 말을 끊었다.


  “뭔가를 계속 만들 팔자네.”

  “제가요?”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해.”

  “네? 지금 하는 일이요?”


  어쩐지 말끝마다 물음표가 떨어지지 않았다.


  “얘는 지금 저랑 같이 미싱 일 다녀요. 글도 쓰고요.”


  엄마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꼭 덧붙였다.


  “그래, 그걸 계속해야 해.”


  나는 믿을 수 없어 재차 물었다. 네? 정말요?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이 좋을 거야.”


  별로 믿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차라리 취직 시장에 다시 뛰어들라고 했다면 속이 편했을까. 나는 왠지 씁쓸해서 나는 뒤이어 돈은 많이 버나요? 물었다.


  “돈 벌 생각은 하면 안 돼.”


  더 믿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내가 고개를 떨구자 엄마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급히 남동생과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한쪽으로 밀려난 물건처럼 덩그러니 앉아 가슴께가 답답해져 오는 걸 느끼며 다음 질문을 생각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한 채 그 길로 그 점집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이 아줌마(언제부턴가 호칭이 바뀌었다)는 모르는 게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툴툴댔다.




  “네가 하고 싶은 일, 다 하라고 했잖아. 뭐가 문제야?”


  한참을 한낮에 만난 두 점쟁이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하니 친구가 나에게 되물었다. 이걸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나는 여전히 형편없는 글을 쓰고 미싱도 잘 못 다룬다.


  "사실은 둘 다 소질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

  “미싱은 아직 4, 5개월 배운 게 전부잖아.”


  못하는 게 당연해. 친구는 곧 바쁜 일이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허무하게 끊긴 목소리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멍한 얼굴로 괜히 SNS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불현듯 두 번째 점집에서 들은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뭔가를 계속 만들 팔자.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있지만, 실패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도 되지 않을까. 다시 시작한다는 것. 나는 침대에 철퍼덕 누워서 ‘다시’라는 말을 곱씹었다. 생에 미련이 넘치는 나는 ‘다시’를 외치는 것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특기이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낮에 만난 점쟁이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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