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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Aug 30. 2020

다림질 못하는 사람


  아이론(다리미)을 켤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주의를 줬다.


  “손 데면 안 되니까 조심해.”


  엄마의 목소리 뒤로 곧 물이 연결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고, 전기 스팀 보일러의 전원이 빨갛게 켜졌다. 그리고 나 역시 전원이 들어오듯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이론을 사용할 때면 내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듯했다. 며칠 전엔 다림질하다가 왼손 검지를 데었다. 곧 물집이 잡혀 부풀어 오르는 손가락을 보며 엄마도 나도 다시 한번 조심, 또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던 터였다. 공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힘을 빼고 움직였다간 다치기 쉬웠다. 날카로운 쇠붙이도 쇠붙이지만 뜨겁게 올라온 아이론의 열기가 나를 바짝 피 말리게 했다. 차가웠던 아이론이 서서히 달궈지는 동안 나는 다림질을 할 옷감들을 정리했다.


  아이론을 사용할 때는 주로 옷의 마무리 단계다. 옷의 앞판과 뒤판을, 본판과 소매를 합봉 한 후 밑단을 말고 나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원피스나 셔츠의 모양이 나오는데 (우리 공장에서는 여성복을 만들어 납품했기 때문에 원피스와 셔츠를 주로 만들었다) 이때 알맞게 각을 주기 위해서 다림질을 하는 것이다. 아이론의 열기로 옷감을 쓱쓱 밀기만 하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안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시접 안으로 밀어 넣고 다림질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다림질은 은근히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 작업이었다. 나는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림질에 매달리지만 잠깐 시선을 잘못 주기만 해도 뜨거운 김이 내 손을 덮치거나, 옷감이 울거나 안감이 시접 위로 튀어나와 버린다. 결국, 나는 달궈진 아이론처럼 머리끝까지 신경질이 나 버린다.


  미싱을 배우기 전,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 과목과 글쓰기를 가르쳤다. 가르친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저학년 학생들이 많았다. 내가 맡은 반은 시간마다 4명에서 7명까지 학생들이 오고 갔는데, 비슷한 실력의 아이들을 한 반에 모아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수강할 수 있는 수업 시간을 선택한 것대로 모아뒀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실력의 편차가 있었다. 어떤 아이는 책을 읽고 어렵지 않게 감상문을 써서 나에게 보여줬지만, 어떤 아이는 어려운 맞춤법에 질려 글쓰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받아쓰기할 때 교실은 흡사 전쟁터가 된다. 나는 아이들의 실력을 확인하며 빨간펜으로 별이나 하트를 그려 피드백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틀린 문장은 세 번씩 쓰게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다가도 원장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이 교실로 와 나를 찾으면 목소리를 금세 바꾸고 행정 업무를 해치웠다. 나는 잘 적응해가는 선생님이었다.


  받아쓰기하기 전, 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급하게 말고, 천천히 쓰는 거야.”


  아이들은 말없이 ‘네.’라고 대답한다.


  “커닝하면 절대 안 돼!”


  그렇게 덧붙이면 아이들은 격자무늬가 그려진 네모 공책을 한껏 자기 몸 쪽으로 가져와 연필을 움직였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져다준 받아쓰기 연습용 문장들을 읽으며 아이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걸었다. 아이들 키만큼의 긴장이 감도는 교실이었다. 열 개의 문장을 끝으로 채점을 하기 위해 내 자리에 앉으면 아이들이 검사를 맡기 위해 공책을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의 점수를 받아 들고 여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웃는 얼굴과 아쉬운 얼굴, 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점수를 더 궁금해하는 얼굴들이 있다. 이번엔 우는 아이만은 없기를 바랐는데, 아이 중 가장 짓궂은 남자아이가 울먹울먹 하며 받아쓰기를 다시 봐야 한다고 떼를 썼다. 나는 아이에게 바로 다가가지 않고 잠깐 멈춰서 아이를 지켜봤다. 아무래도 틀린 문장을 세 번씩 쓰는 게 싫은 듯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는 준비한 만큼 못한 게 너무 속상해서 울고 있었다. 자꾸 못한다고만 얘기하는 아이에게 약간 미안했다.


  “못해서 하기 싫어요.”


  진정한 아이가 우물거리듯 얘기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못하는 사람이 돼. 그래도 괜찮아?”


  아이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날 쳐다봤다. 대답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선생님이랑 천천히 써보자. 그럼 금방 쓸 거야.”

  “안 쓰면 안 돼요?”

  “약속했잖아.”


  아이는 내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자리에 앉아서 필통을 만지작거렸다.




  벌써 두 계절 가까이 미싱을 배워가고 있었다. 엄마의 배려로 일하는 틈틈이 미싱을 연습했지만, 실력은 늘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다른 부수적인 작업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지루해지고 있었다. 다치지만 않아도 다행인 나날들이었다. 나는 다림질을 할 때마다 내 상사인 엄마에게 그날 그 아이처럼 '안 하면 안 돼?'라고 묻고 싶지만, 내가 처음 미싱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날 말렸던 아빠의 손짓 같은 게 떠오르면서 입을 다물게 된다. 나 외에 누군가에게 소질 없다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진 않았다. 이상한 자존심.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못하는 사람이 된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내가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먹고산다는 건, 노동을 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눈을 감고 그 개구졌던 아이의 눈망울을 떠올린다. 언젠가 나에게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이 뭐였냐고 물어보며 웃는 입술.


  “나는요, 엄마가 공무원이 되라고 했어요.”


  라고 대답하던 목소리.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공장을 빠져나와 한구석에 서서 두 손으로 얼굴을 문댔다. 확신 없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 미래는 어딘지 구겨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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