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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국진 Jul 30. 2020

[PD꿈꾸기]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K팝

음악이 좋아 직업을 찾아냈어요

부모님과 20년 함께 살고 대학,군대를 졸업하고 26살부터 직장을 다니게 되었으니

가족과는 20년 살고 혼자 혹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시간은 90세 기준 70년이다.

공부는 25년, 일은 요즘같아선 50년을 해야하니 직업의 선택은 중요하다.

방송계열? 방송국 아무일? 언론쪽? 이따구로 생각해선 노답이다. 나중에도 강조하겠지만

회사를 먼저 정하지 말고 직군을 먼저 정해야만 한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음....대기업?" 이런분들 의외로 많다. 후덜덜이다. 그러면 못쓴다.


그네를 타고 밝게 웃는 아이는 20년후 무엇이 될까?

저 아이는 당시에 무엇을 직업삼아 살아갈까 생각도 못했겠지...


음악피디로의 삶의 원천은 엄마의 직업

충청도 충주에서 아버지는 방송국, 어머니는 버스정거장 앞 작은 레코드가게를 운영하신 사장님이었다.

이름은 <문화레코드>, 충주MBC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문화방송을 다녀서 작명을 저래했을까? 글을 쓰다보니 의문이 생긴다.

개업했을 당시만 해도 2차선이던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나서 어릴때지만 "박정희가 최고야!"뭐 이런식의

칭찬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그 뒤로 장사가 꽤 잘되었다고 해서...

암튼, 레코드가게에서 일하시던 엄마는 집보다 가게에 더 오래있었고 덕분에 난 엄마뱃속에서부터

가게가 화재사고로 전소가 될 때까지 나는 그렇게 엄마가게에서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MBC토요일토요일은 즐거워>를 보며 또 노래를 들었다.

자연스레 엄마,아빠의 직업덕분에 내 꼬맹이시절은 음악이 늘 곁에 있었고

고등학교2학년 때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겠다 마음먹고 곰곰히 생각한 후

방송국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진로를 결정했고 한 번도 마음이 바뀐적이 없었다.


사실 나의 원대한 꿈은 따로 있었는데 이름하여 <운동선수>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장래희망란에 운동선수만 써왔다. 대통령 안썼다. 과학자 안썼다.

초등학교3학년~6학년 쇼트트랙선수로 활동하다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두들겨맞고

그만두고 중학교땐 1년만에 키가 40센치가 크면서 농구선수를 꿈꾸었다. 가출도 해봤지만 아빠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운동선수>의 꿈을 버렸다.


차라리 가수가 되자고도 했다!

80년대는 화재보험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의 가게는 88올림픽을 앞두고 불이났다.

옆 가게에 불이나 옮겨붙었다고 하는데 그 가게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안OO약국>

불 소식을 너무 늦게 알아서 가게에서 건져낸 건 턴테이블 몇개와 LP판 수백개 정도였다.

*표지가 불에 그슬린 LP판들은 한동안 집 베란다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쓰레기장으로 내가 내다버렸다.

 심부름은 늘 내 몫이었는데 누나는 장녀라 공부한다고 형은 장손이고 여동생은 어리다는 이유로

 아빠 담배심부름부터 갖은 부림들을 유치원다닐 때부터 도맡아 왔다. 제길...

고등학교 1학년 때 한참 전화오디션이 유행이었다.

전화로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면 기획사가 판단해 최종오디션에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임창정, 더클래식,윤상,이승환을 좋아하는 나는

"운동선수가 못 될바에야 가수나 되보자"하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집 무선전화기로 노래를 녹음해 오디션에 지원했고 3차 예선을 통과해 최종오디션을 보러 서울에 올라갔다.

회사는 <신촌뮤직> 그땐 몰랐지만 권인하님이 운영하던 엔터테인먼트였다.

부모님 몰래 오디션을 봐야했기때문에 당시 대학생이었던 친구누나의 도움으로 함께 오디션을 보러갔다.

사실 그 친구의 누나가 나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 이야기는 또 나중으로 미루자. 요거 좀 재미지다.

서울에 오디션을 보러 갈 때 다짐을 했다.

합격하면 가수가 되고 떨어지면 가수랑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자고...

최종오디션 선곡은 임창정의 <결혼해줘>였고 나는 나대로 열창을 해댔는데 결과는 탈락!

오디션은 애머랄드 캐슬의 <발걸음>같은 샤우팅이 돋보이는 곡으로 나름 어필했던 거 같은데

결선은 왜 저런 낮은 음의 노래를 선곡했는지...그뒤로 결혼해줘는 듣지도 부르지도 않는다.

나중에 연예가중계를 연출하며 임창정 게릴라데이트 촬영 때 만나게 되었는데 촬영내내 웃지를 못했다.

이러언 못난놈 못난놈!!!

다음 날부터 내 꿈은 방송국 입사였고

오디션을 보고 왔단 소식이 좁은 충주에 퍼지게 되면서 나는 스타(?)가 되어버렸고

등교전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늘 여학생이

간식과 편지를 주었고 모 여고에서는 반학생전체가

편지를 보내적도 있었다.

안 믿어도 되고 믿지않고 싶을거라 확신한다.

허나 진짜다;;;


무언갈 좋아하면 그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있다!

결론은 버킹...아니 (모르는 사람은 요즘사람, 이해하면 옛날사람)

결론은 좋아하는 취미를 깊이 파면 50년 이상 돈벌수 있는 직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듣고 자라 어릴때부터 모르는 노래 모르는 가수가 없었고

토토가를 즐겨보았으며 박소현의FM대행진을 매일 듣고 잤고 친구생일 선물로 늘 노래테이프를 선물했다.

좋은대학 좋은학과를 선택해서 입학해도

그에 맞는 스펙을 쌓다가 포기하고 아무 대기업이나 들어가보려한다.

PD가 되려고 신문방송학과 입학을 위해 공부하지만

신방과 못들어가도 피디질은 할 수 있다. KBS에 신방과 출신은 많지않다. 심지어 나는 전자공학과.

차라리 좋은 노래를 많이 듣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와 일할 수 있는 꿈을 키워

방송국에 입사해 실제로 그 가수와 만나라.

같이 일도하고 전화번호도 따고 밥도 먹고 술도 먹자.

예능피디를 꿈꾼다면 더더욱 음악을 듣자.

세상천지 모든방송에 음악이 BG로 안깔리는 방송이 있나?

도서관에서 공부하지말고 걍 노래나 듣고 덕질하고 놀자.

공부는 공채준비할 무렵부터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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