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하던가. 지금 내 모습이 정확히 그 꼴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열 살, 즉 초등학교 3학년 때로 말이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너절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법이기에.
열 살 때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엄마의 부재였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집을 나갔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긴 출장을 떠난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2학년을 거의 마쳐갈 무렵에야 깨달았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학교 운동장에 있는 철봉을 타다가 그냥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 엄마는 어디론가 영영 떠나버렸구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구나.
맑은 날이었고 날씨가 조금 추워서 운동장에는 나밖에 없었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더 높은 철봉 위로 기어올랐다.
철봉 위에 앉아 올려다보는 하늘은 좀 더 파랗고 높은 것 같았다.
철봉에서 뛰어내린 다음 모래먼지 속에 뒹굴고 있던 신발주머니를 집어 들고 집으로 갔다. 손에서 쇠 냄새가 났다. 집에 도착한 나는 깨끗이 손을 씻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할머니!"
"우리 강아지, 왔어?"
"나 물어볼 거 있어."
할머니는 나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 나는 할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집 나간 거지?"
잠시 침묵이 있었다.
"엄마는 이제 안 오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커다란 가슴에 내 얼굴이 온통 파묻혔다. 할머니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쓸어주며 '불쌍한 것, 에휴, 불쌍한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별로 슬프지는 않았지만 울었다. 내가 아이처럼 엉엉 울 것을 할머니가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고 잘 웃지도 않게 되었다. 학교에 가도 내가 하는 일이라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칠판을 응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고, 숙제도 거의 해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했다. 음침하고 지저분하다며 나를 피해 다녔다.
얼마 안 가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내게 욕을 하거나 칠판 지우개를 집어던져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아이들을 더 자극한 모양이다.
사물함을 열어보니 죽은 쥐가 들어 있었다. 서랍 속에 넣어뒀던 교과서들은 모조리 밖으로 꺼내져 난도질을 당했다. 어느 날은 학교에 왔더니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나는 책상과 의자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텅 빈 바닥에 그냥 앉아버렸다. 여전히 무표정하고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채였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와, 진짜 독하다. 자폐 아냐? 장애 있는 것 같아.
그 모든 괴롭힘에 반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점점 학교에 가기가 두려워졌다. 처음에는 꾀병을 부려서 결석했지만, 나중에는 핑계도 대지 않고 학교를 빼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결석은 두 번, 세 번으로 점차 늘어갔고 결국 등교 거부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나는 그 일 년간 학교에 거의 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최소한의 출석 일수는 채웠던 모양이다. 생활기록부는 수없이 많은 결석과 결과로 얼룩졌지만, 나는 무사히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이 된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난 저학년이 아니야.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 다시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도 사귈 거야. 엄마 없이도 난 잘할 수 있어.
그러나 내게는 일 년이라는 학습 공백이 생겨나 있었다.
다른 과목들은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지만 수학이 버거웠다. 열한 살의 나는 곱셈, 나눗셈은 고사하고 덧셈, 뺄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들을 단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학을 포기해버렸다.
그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구구단을 몰랐고 사칙연산을 하지 못했다.
수학을 모른다는 게 내 삶을 어떤 식으로 뒤흔들어 놓을지, 막 성인이 되었을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