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 있더라구요. 아주 많이.
나는 수학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결국 자퇴하긴 했지만 대학 문턱도 잠시 밟아보았다. 학창시절 내내 국어, 영어, 사회, 윤리 등 다양한 과목에서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 학생이었는데, 수학 성적은 늘 바닥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숫자를 가지고 노는 데서 아무런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산수 실력이 늦되는 것을 걱정한 엄마는 내게 학습지를 풀도록 시켰다. 나는 학습지를 침대 너머 빈 공간에 처박아두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했다. 선생님이 오시는 날에는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도망쳤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엄마는 집을 나갔다. 이제 더는 내게 수학을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그 사실을 한껏 즐겼다. 그러나 엄마의 부재 이후 학교와 불화하기 시작한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전체를 등교 거부를 하며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나는 엄마가 없어도 내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학교에 다시 잘 다녀야 했고, 예전처럼 친구들도 사귀어야 했다. 그러나 일 년의 공백은 나를 학습 부진아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잃어버린 일 년을 되찾기 위해 다른 아이들보다 배로 노력했다. 집에서도 늘 교과서를 보며 공부했다. 사교육을 받을 형편은 아니었기에 스스로 열심히 해야 했다.
국어는 원래 잘하는 과목이어서 어렵지 않게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다른 과목들도 대부분 외우기만 하면 되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학 교과서의 내용은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수업 시간에 듣는 설명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구구단도 외우지 못하고, 기본적인 사칙연산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중학생이 되었다. 받아올림, 받아내림, 분수, 약수, 소수, 약분, 통분,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 그 중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소인수분해니 일차방정식이니 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수학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 가까워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과목의 공부는 곧잘 했고,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내가 수학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걸 알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수학 선생님도 몇 분이나 계셨다. 사비로 문제집을 사다 주고, 퇴근 후의 자유시간까지 반납해 가며 내게 수학을 가르쳐주셨던 고마운 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호의를 기껍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학생인데 초등학교 수학을 이해하지 못해서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다는 기이한 자존심의 발로였다.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이루어졌던 몇 번의 수학 수업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다. 선생님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설명을 멈추고 분필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놓은 선생님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수학이 그렇게 싫어?"
"네."
"왜?"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이런 것 좀 모른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요새는 계산기가 계산 다 하는데."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열변을 이어갔다.
"사칙연산은 필요하다는 거 인정할게요. 그런데 무슨 삼각함수라든가, 방정식이라든가, 이런 건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잖아요.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고, 왜 배우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덥지는 않았던 초여름이었다. 머리 위에서 선풍기 한 대가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책상 위의 종이 뭉치는 선풍기 바람에 날아갈 듯 말 듯 팔락거렸다.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학은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야. 너는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수학과 연관되어 있어. 특히 다른 건 몰라도 사칙연산은 할 줄 알아야 해."
나는 펜을 딱딱거리며 창밖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선생님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어. 지금이라도 해야 해. 모든 진도를 따라잡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초등학교 수학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그게 너의 발목을 크게 잡을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물었다.
"수학 공부, 하기 싫니? 도저히 못 하겠어?"
"네."
선생님은 잠시 내 표정을 살피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교탁으로 가서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는, 칠판에 적힌 내용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지만, 너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나로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
"그러니까 앞으로는 보충 수업하자고 너를 부르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언젠가 네가 정말로 하고 싶어진다면, 그때는 편하게 얘기해. 수업은 언제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교실을 나가버렸다. 이게 내가 수학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날의 기억이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학이라는 과목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과목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구구단도 모르는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별 무리 없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자퇴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경력이 없는 스무 살 여자애가 할 만한 일들이란 편의점, 홀서빙, 그런 것들이 전부였다. 그런 일들에는 대부분 캐셔 업무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일할 때마다 계산 실수를 했다. 시재에 구멍이 나 봤자 보통은 100원, 50원인데 내가 일한 시간대에는 금액이 몇만 원씩 맞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돈을 훔쳤다고 의심받기도 했고, 욕을 먹기도 했고, 해고도 당했다. 일하러 가는 것이 점점 무서워졌다.
"이런 것 좀 모른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철없던 시절의 내가 당당하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수학을 모르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몇 차례인가 수학을 공부해보려고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스물다섯 이후부터는 돈 계산을 할 필요가 없는 일들에 종사하게 되면서 수학의 필요성을 거의 잊고 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숫자 관념이 없는 나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돈을 펑펑 썼다. 통장 잔고가 빠르게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돈은 늘 부족했고 저축은 단 한 푼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대출까지 받아 가면서 사고 싶은 것들을 샀다. 월세보다 비싼 향수를 턱턱 사들여 장식장에 전시해두고 즐거워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이 좋았다. 모든 끼니를 고가의 배달음식으로 해결하며 흥청망청 살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는 내 연봉보다 큰 금액의 빚이 생겨나 있었다. 나는 그걸 갚아나갈 능력이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잔치는 끝났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했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린 것인지. 어쩌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 버리고 말았는지. 나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거대한 항아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