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린 내게 '금융 교육'이랄 만한 것을 거의 해주시지 않았지만, 다음의 세 가지 말만은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다. 첫째, 신용카드 만들지 마라. 둘째, 대출 받지 마라. 셋째, 보증 서지 마라.
보증을 서지 말라는 말은 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할 정도이니 인류 공통의 지혜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신용카드와 대출은 다르다. 사용하기에 따라 정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큰 위기를 넘길 수도 있게 해주는 것들이니까.
아빠도 신용불량자였다. 그래서 신용카드와 대출을 '잘' 쓰는 방법을 가르칠 만한 지혜는 아빠에게도 없었던 것 같다. 당신께서 신용카드와 대출 때문에 파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나에게는 무조건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던 거겠지.
그래서 오랫동안 신용카드와 대출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카드빚으로 파산한 아빠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옆에서 모두 목격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에도 나는 몇 년간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았다.
아마 스물셋이나 스물넷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주변 친구들은 이미 대부분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비싼 물건을 할부로 턱턱 구매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독립하여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신용카드를 만들지 말라'는 아빠의 금언은 마음속에서 흐려져버린 지 오래였다.
성인이 된 뒤에도 몇 년간 신용거래를 하지 않았기에 신용등급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심사가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는 모 카드사에 카드 발급을 신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가 발급되었다. 회사로 첫 신용카드가 배송되어 왔을 때의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카드 한 장이 내 삶을 이토록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용카드가 생긴 나는 한동안 신나게 카드를 긁고 다녔다.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카드값으로 모조리 빠져나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것 같아 보였기에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신용카드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대출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도를 꽉꽉 채워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고가의 물품을 할부로 사들이면서도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은 이용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대출을 받게 된 건 스물여섯 살 겨울의 일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6년 가까이 교제 중인 애인이 있었다. 애인은 막 사업을 시작한 참이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지면서 출발부터 위기에 봉착한 상태였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받고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버티던 애인은 어느 날 내게도 대출을 권유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시점에서 이별을 택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애인을 위해 저축은행에서 1300만 원을 빌려 그에게 주었다. 명목상으로는 빌려준 것이었고 애인도 갚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그냥 준 것이었다고 봐야 했다. 그를 사랑했기에 차용증도 쓰지 않았다.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멍청한 사람이다. 애인은 미친 사람도, 멍청한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내게 진 빚을 성실하게 상환하지 않았다.
돈 문제가 얽히기 시작하니 여섯 해 동안 이어온 사랑도 순식간에 빛이 바래버렸다. 우리는 헤어졌고, 헤어지고 나니 애인은 정말로 돈을 잘 갚지 않았다. 약속한 날짜가 도래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 가며 상환을 미루는 애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더는 그에게 실망하고 싶지도 않았고, 빚쟁이처럼 독촉을 하기도 싫었다. 무엇보다 그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돈 문제를 온전히 내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남은 금액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빌려준 게 아니라 그냥 준 거라고 생각하겠다고 애인에게 연락했다는 의미이다.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그에게서는 두 번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애인이 내게 갚은 금액은 약 200만 원 정도였을 것이다. 애인은 떠나고 1100만 원가량의 빚이 남았다. 그 빚을 갚아나가던 지난한 과정을 이 글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올해 1월에 대출금을 완제했다는 사실만 말해두겠다.
1100만 원의 빚을 안고 살아가던 시간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드디어 그 빚을 모두 갚았으니 이젠 돈 걱정 없이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었을 텐데, 나는 왠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내 관심을 잡아끈 건 다름아닌 카드론이었다.
'카드론 3000만 원 이용 가능'. 나는 그 문구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 대출을 받고 완제해본 나는 대출이란 게 별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젊고 건강하고 직업이 있는 나는 대출을 받더라도 상환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카드론은 가장 간편하게 큰 금액을 손에 쥘 수 있는 대출이었고, 서류도 심사도 없이 신청만 하면 바로 입금된다는 사실이 나를 사로잡았다.
물론 카드론의 '간편함' 이면에는 어마어마한 이자가 있었다. 내게 1300만 원을 빌려주었던 저축은행의 금리는 연 8.86%였는데, 카드론 금리는 무려 연 19%에 달했다. 그러나 나는 연 19%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600만 원을 빌려도 한 달에 30만 원씩만 갚으면 되잖아? 이 정도는 낼 수 있지.' 그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600만 원을 빌렸다. 그다음에는 300만 원. 그다음에는 200만 원. 300만 원. 120만 원. 1000만 원. 300만 원. 600만 원. 200만 원. 다시 200만 원. 이 모든 대출이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카드론 한도는 조금씩 상향되었고 나는 상향된 만큼 또 돈을 빌렸다.
마침내 나는 카드론으로만 4000만 원이 넘는 빚을 지니게 되었다. 내 연봉보다 큰 금액이었고, 갚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는 그게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언제나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야 어렴풋이 알게 될 뿐이다. 내가 내린 그 결정,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 때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카드론을 이용하면서도 내가 이 정도의 빚더미에 앉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