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은솔 Sep 23. 2024

'소액결제'라는 이름의 덫

이름은 '소액결제'이지만, 결코 소액이 아니었다

소액결제 때문에 한 달 휴대폰 요금이 100만 원 가까이 청구되던 시기가 있었다. 괴로운데 어디다 말할 수도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었다. 주변의 몇몇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보기도 했지만 원하는 답변은 듣지 못했다.


'소액결제'라는 이름 때문인지 친구들은 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나 스스로도 '요즘 소액결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면, 내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왠지 굉장히 하찮고 사소해 보였다.


소액결제로 인한 요금이 월 100만 원까지 청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친구들은 알지도 못했다. 대부분은 소액결제라는 옵션 자체를 완전히 잊고 살아오다가 나로 인해 처음 인지하게 된 것처럼 반응했다. 휴대폰에 그저 부록처럼 딸려 있을 뿐인 소액결제 기능을 정말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당시 내 주위에서는 나뿐이었다.


매월 기십만 원씩 청구되는 통신비를 신용카드 할부로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을 때, 나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구글에 '소액결제', '소액결제 중독'을 검색해보았지만 나오는 건 '소액결제 현금화' 따위의 탈법적인 광고뿐이었다. 이미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마수(魔手). 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만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혹에 약하고, 충동성이 강하고,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이 세상에는 무척 많을 터였다. 그들 중에서 나처럼 소액결제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 설마 한 명도 없을까? 하지만 왠지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아무도 이에 대해 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내가 쓰리라. 세상에는 이런 괴로움도 있다는 걸 내가 이야기하리라.


그런데 막상 내가 겪는 고통을 글로 옮겨보자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이런 종류의 고통은 설명하기가 지리멸렬하다. 모든 것이 결국은 내가 자초한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누가 내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면서 소액결제를 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내가 '마음먹고' 안 쓰면 그만인 것을 계속 써서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건데, 이걸 남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소액결제 중독자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소액결제 중독에 관한 수기를 쓰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현실로 돌아왔다. 사칙연산을 할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통찰에까지는 아직 가 닿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늘 내가 버는 돈 이상을 썼다. 내가 정확히 얼마를 쓰는지도 모르는 채로 돈을 썼고, 하룻밤 만에 거금을 탕진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내 모든 소비는 충동적이며 극단적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소비 행태에 소액결제와 신용카드가 더해지니 결제대금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카드빚'이라고 하면 같은 금액이라도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소액결제'라고 하면 아무래도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기실 소액결제는 저신용자들이 아무 조건 없이 가질 수 있는 신용카드라고 봐야 하는데도 말이다. 당시 나는 신용카드가 두 장 있었는데, 신용도가 낮아 카드를 발급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액결제는 다르다. 본인 명의의 휴대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소액결제의 사용처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 상 대부분의 플랫폼에서 소액결제를 이용할 수 있다. 도서, 의류, 게임, 문화, 외식 등 어떤 분야에서도 소액결제는 결제 가능한 수단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이러한 범용성과 편리함은 소액결제를 자주 이용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처음에는 정말 '소액'을 결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게임을 하다가 사고 싶은 게 생겨서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웬일인지 자꾸만 오류가 나면서 카드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제 수단 중 '소액결제'라는 옵션이 있음을 확인한 나는 이번 한 번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액결제로 캐쉬를 충전했다. 그다음에는 책이었다. 지갑이 멀리 옷장 안 가방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걸 꺼내기가 귀찮아서 소액결제로 구매했다.


그렇게 몇 차례 소액결제를 이용하고 나니 편리함을 깨달았다. 일일이 카드 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고, 휴대폰 인증 한 방이면 간편하게 결제가 이루어진다니. 나는 점점 소액결제로만 모든 쇼핑을 하게 되었다.


앞서 나는 소액결제란 '저신용자들이 아무 조건 없이 가질 수 있는 신용카드'라고 말했다. 소액결제의 문제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신용카드나 소액결제를 오래 쓰다 보면 '일단 써버린 다음 뒷일은 다음 달의 나에게 맡기는' 식의 소비 패턴이 고착화된다.


소액결제의 최대 한도는 100만 원이다. 처음에는 20만 원, 30만 원 정도의 한도로 시작하지만 몇 달간 꾸준히 소액결제를 이용하면 한도가 매우 쉽게 상향된다. 100만 원 한도의 신용카드를, 이용자의 지불 능력을 면밀히 따져보지도 않고 부여한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적이다.


"도대체 뭘 그렇게 샀어?" : 몇몇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내 상황을 이야기했을 때 가장 먼저 돌아온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러게, 도대체 뭘 그렇게 샀을까. 그냥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소액결제로 다 샀다. 주로 책이나 배달음식이었고, 때로는 고가의 헤드폰이기도 했다. 나에게 소액결제는 숨겨놓은 비상금처럼 느껴졌다.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데도 돈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금고. 공돈이 아니라 나중에 내가 지불해야 하는 돈인데도 왠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쓰게 되었다.


"소액결제 못 쓰게 막아놓으면 되잖아." : 위의 질문에 그럭저럭 답하고 나면 정해진 순서처럼 이 말이 돌아오곤 했다. 나라고 소액결제를 막아두는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막아두었다가도 사고 싶은 게 생기면 금방 다시 풀고 써버리게 되는 것을. 소액결제를 막고 푸는 것은 전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본인인증 절차 하나면 막아뒀던 소액결제를 곧바로 풀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만 변경이 가능하다는 식의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몇 번이나 소액결제를 막았다가 풀고, 막았다가 풀면서 결국 한 달에 기십만 원을 쓰게 되었다.


중독은 병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이든, 음식이든, 알코올이든 무언가에 중독된 이들의 뇌는 건강한 사람들의 뇌와 다르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 사실을 알더라도 중독이 정말 '병'이라고 믿고 중독자들을 환자로 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남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너무나 '멀쩡해' 보인다. 일상생활이나 업무는 모두 무리 없이 해내면서 혼자 있는 순간에만 무언가에 탐닉하고, 남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는 중독자들이 상당히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독자들을 '의지박약'이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린다. '안 하면 되는데', '충분히 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의지가 부족해서 중독행동을 하는 거라고 판단한다. 심지어 중독자들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며 실망한다. 왜 또 술을 마셨지? 안 마실 수 있는데. 또 돼지처럼 음식을 먹었어. 안 먹을 수 있는데. 하지만 나는 인정해야 했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가 아플 정도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는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며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나는 종종 내가 소액결제 중독에 빠져 있을 무렵의 통신비 고지서를 다시 살펴본다. 2022년 6월에는 22만 원이 청구되었다. 5월에는 79만 원. 4월에는 60만 원. 3월에는 다시 22만 원. 그러다가 2월에는 84만 원이 청구되었다. 중독은 '또'와의 전쟁이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또다시' 흐트러지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다.


이제 나는 소액결제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또'들을 지나쳐 와야 했다. 나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한두 번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중독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않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소액결제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산수를 하지 못는 데서 오는 금전감각의 부재라는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더 크고 심각한 문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 번째 시련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 이름, 바로 '카드론'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