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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Sep 27. 2024

책과 향수 : 자부심과 수치심

앞선 챕터에서 카드론으로 40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빌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썼는지 말해보도록 하겠다.


사실 내가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건 책과 향수뿐이다. 그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문제는 책과 향수를 너무 많이 산다는 것이다.


책을 사랑한 지는 오래되었다. 특히 2018년부터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나의 책 구매는 중독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전자책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기에 늘 고민 없이 결제할 수 있었다. 고민 없는 결제는 필요 이상의 구매로 이어졌다. 전자책 서재의 책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게임처럼 재미있었다.


나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1143권의 전자책을 구매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한 달에 220권 이상의 책을 산 것이다. 그리고 2024년 10월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내 전자책 서재에는 1906권의 책이 있다. 1월부터 9월까지 763권의 책을 더 구매한 셈이다. 달마다 거의 100권꼴로 책을 사들인 것이니 정상적인 소비 패턴은 아니다.


전자책 한 권의 가격을 15000원으로 가정하고, 달마다 220권씩 샀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매달 33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책을 사느라 써버린 셈이 된다. 참고로 330만 원은 내 월급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부끄럽지만 사놓은 책들 중에서 읽은 책은 200권도 채 되지 않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지만, 매달 책을 100권 넘게 사들인다면 구매하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갈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해마다 80권가량의 책을 읽는다. 1906권은 내 속도로 23년 동안 읽을 수 있는 양이다.


어릴 적부터 늘 책과 함께였다. 아빠는 다른 건 몰라도 책만은 아낌없이 사 주셨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책과도 거의 인연을 맺지 않은 채 살아온 아빠는 여느 '고졸 부모'들이 그렇듯 먹고살기 위해 숱한 모멸감을 견뎌야 했다. 아빠는 아마 나만은 당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신화를 진지하게 믿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에, 내 곁에는 항상 책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집에 있는 80권짜리 동화책 전집을 닳도록 읽었다. 고학년 때부터는 아빠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 약속에 따르면 내게는 한 달에 한 권씩 원하는 책을 사 달라고 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책 읽는 습관에 길들여진 내가 달마다 한 권의 책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학교 도서실과 동네 구립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달이 바뀔 때마다 아빠가 사주는 한 권의 책과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들만으로 내 어린 시절은 풍족하고 충만했다. 도서관의 장점과 편리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성인이 된 뒤에도 한동안은 책을 꼭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니 욕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에 점차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좋아하는 분야에 돈을 쓰고 싶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언제든 다시 꺼내 보기 위해' 하나씩 소장하기 시작했다. 책을 구매하면 구매할수록 사고 싶은 책은 더 많이 생겼고, 그만큼 책에 쓰는 돈도 더욱 많아졌다. 나중에는 월세와 공과금 낼 돈만 남겨두고 모조리 책을 산 다음, 교통카드를 충전할 돈도 없어 수 킬로미터씩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며 생활하기도 했다.


내가 살던 작은 고시원은 금방 책으로 가득 찼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으로 꽉 찬 그 방에서 나는 행복과 안도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물리적으로 놓을 공간이 없어서 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내 관심은 전자책으로 향했다. 결국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종이책을 중고서점에 팔아버렸고, 전자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행위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책을 사는 행위는 묘한 효능감을 안겨준다.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 좋아하는 책은 전부 사들일 수 있을 정도의 구매력이 있다는 것이(사실 내게는 그런 구매력이 없지만)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향수를 좋아하게 된 건 아마 2022년부터였던 것 같다. 원래 나는 예쁜 옷을 골라 입고 공들여 화장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식이장애를 앓게 되면서 급격하게 살이 찐 뒤로는 꾸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뚱뚱해서 꾸며봤자 예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몸에 맞는 옷이 없어서 원하는 대로 나를 꾸밀 수가 없었다. 고도비만인에게 허락된 옷은 자루처럼 크고 못생긴 옷뿐이었고, 나는 점점 나를 꾸미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향수는 내 체형과는 상관없이 나를 꾸밀 수 있는 수단이었다. 몸에서 늘 좋은 향이 난다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저렴한 향수로 시작했지만, 점차 '남들과 쉽게 겹치지 않는 나만의 향'에 대한 욕구가 생기면서 값비싼 니치향수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그런 향수의 가격은 한 병에 몇십만 원이 기본이었다.


나는 정신 없이 향수를 사들였다. 백화점 1층을 돌며 이런저런 향을 맡아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향수를 골라 구매하는 것은 책을 사는 일 이상으로 즐거웠다. 초라한 4평 원룸에서 오직 내가 사들인 향수들만이 반짝반짝 빛났다. 단정한 용모의 백화점 직원들이 향수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다. 백화점에서 향수를 구입하는 경험은 인터넷 서점에서 전자책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돈을 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경험이었다. 고가의 서비스와 재화를 구매하는 건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었다.


내 과소비는 자부심과 수치심의 양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잔뜩 사들이거나 비싼 향수를 구입하고 나면 일단 뿌듯함에 사로잡힌다. 2000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전자책 서재와 방 안 한구석에 진열되어 있는 향수들은 나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자부심은 곧 수치심으로 바뀌어 내 목을 조른다. 읽지도 않을 책을 이렇게나 많이 사두었다는 사실, 형편에도 맞지 않는 명품 향수를 몇 개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여기까지가 내 중독의 역사다. 처음에는 음식에 중독되었고, 그 후에는 책에 중독되었으며, 마지막으로는 향수에 중독되었다. 무언가에 쉽게 중독되는 건 내면에 결핍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결핍에 대해 다룰 생각이 없다.


중독이 아닌 '과소비'의 측면에서 내 문제를 바라본다면, 이건 결국 내가 수포자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의 법칙과 연산과정을 모른다는 것은 금전감각의 부재로 이어졌고, 금전감각의 부재는 과소비를 낳았다.


더는 회피할 수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바로잡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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