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초등학교 수학을 풀다가 들은 질문
공간의 문제로 집에는 조그만 좌식 책상밖에 없다. 허리와 고관절의 고질적인 통증 때문에 양반다리를 한 채로 오래 있기가 힘들어서, 보통은 집 앞 카페에서 학습지를 풀곤 했다.
음료가 저렴하고 사장님이 친절하셔서 자주 오긴 하지만, 작은 카페이기에 테이블 간의 거리가 넓지 않다. 그래서 옆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다 보인다. 주택가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매일 똑같은 사람들만 오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단골 아주머니 손님 한 분이 내가 풀고 있는 학습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왜 애들이 푸는 걸 풀고 있어요? 이건 유치원생들 푸는 거 아니야?"
부끄럽고 민망했다. 한순간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친절하게 답해드리기로 했다.
"제가 어렸을 때 사정이 있어서 학교를 못 다녔어요. 그래서 수학을 잘 몰라요. 근데 살다 보니 필요해서, 지금이라도 공부하는 거예요."
내 답변을 들은 아주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주머니는 존경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이고, 나는 뭐 학습지 선생님이신가 했어요. 애들 가르치려고 연구하는 건가 했지. 이제 보니까 더 대단한 분이었네."
'대단한 분'이라는 말이 나를 쑥스러우면서도 기분 좋게 해주었다. 아주머니는 모르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는 게 부끄러운 거지,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말로 나를 격려해주셨다.
그 대화를 계기로 아주머니와 나는 약간 친해졌다. 아주머니는 내게 주전부리를 나눠주시기도 하고, 늘 공부는 잘 돼가냐며 진척 상황을 물어보고 응원도 해주신다.
'대단하다'는 말은 그 뒤로도 많은 사람에게서 여러 번 들었다. 이 나이에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줄 알았는데,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놓고 나를 비웃는 사람은 아직 없다. 오히려 멋있다고 해주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초등학교 과정이라 해도 매일 10장씩 학습지를 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 날도 많았고, 배울 만큼 배운 것 같으니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사실 처음의 목적은 사칙연산을 익히는 거였고 그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애써서 더 공부할 이유는 정말로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내 한계를 알고 싶었다.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풀고 있는 학습지의 단계는 O단계까지 있다. O단계는 미적분이다. 나는 현재 D단계를 풀고 있다. D단계는 곱셈과 나눗셈이다. 갈 길이 멀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 공부를 시작한 지 2주쯤 되었을 때, 나는 이것이 수치심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페에서 공부할 때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했다. 책상 위의 어린이용 학습지를 모두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곁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풀고 있던 학습지를 황급히 가렸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울 땐 학습지를 가방 속에 넣어두고 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모르는 게 생기면 학습지 선생님께 질문하면 될 텐데 그러지 않았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채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으므로 유튜브에서 초등학생용 강의를 찾아봤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강의 속의 선생님들은 따뜻하고 다정한 말투로, 아주 천천히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것마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이에게 말하는 어른 특유의 상냥한 어조는 내가 지금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명백하게 느끼게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수학'이라는 사실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이 하는 공부라고 해서 그게 성인의 공부보다 더 쉽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두꺼운 고시 문제집이나 자격증 수험서를 가져와서 공부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나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건 멋진 일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이제 내 친구들 중에서 내가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들 나의 공부를 응원해준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친구들도 많다. 선생님께 질문하는 것도 예전 만큼 부끄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애들이나 푸는 걸' 풀고 있는 게 아니다. 이게 내가 해나가야 할 나의 공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