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까지의 나는 사칙연산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구구단도 몰랐다. 두자릿수 이상의 덧셈 암산을 하지 못했고, 뺄셈은 종이에 써야만 더듬더듬 할 수 있었다. 곱셈부터는 잘 몰랐고 나눗셈은 아예 할 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었고,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드는 아이였다. 지능이 특별히 낮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산수를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등교 거부를 하게 되었고 일 년간 학교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출석 일수를 겨우 채워 유급은 면했지만, 일 년간의 공백은 나를 학습 부진아로 만들었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은 '단계적으로' 진도를 나가야 하는 과목이다. 덧셈을 배운 뒤에 뺄셈을 배우고, 뺄셈을 배운 뒤에 곱셈을 배우는 식으로 순차적인 진도를 나가야 하고 도중에 하나라도 단계를 빠뜨리면 다음 단계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국어나 영어 등 다른 과목은 혼자서 어떻게든 진도를 따라잡았지만, 수학은 독학으로 도저히 점수를 올릴 수가 없었다. 내가 수학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수학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 특유의 예민한 마음은 선생님들의 배려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 수학은 그냥 포기해버렸다. 수학 좀 못한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라도 있겠는가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이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일을 하기 시작하니 점점 문제가 생겼다.
경력 없는 사회초년생이 도전해볼 만한 아르바이트에는 대부분 캐셔 업무가 포함되어 있다. 근무할 때마다 계산 실수를 했고, 내가 일한 시간대에만 시재에 몇만 원씩 구멍이 나니 도저히 일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동료들 앞에서 인신모독적인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참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학 공부를 해야 해. 이렇게는 못 살아.
20대 초반부터 이미 수학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정말로 수학 공부를 시작한 건 서른 살이 된 올해의 일이었다. 7월부터 학습지를 시작했다.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니까 중학교 수학까지는 진도를 나가볼 요량이었다.
성인인데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무척 부끄러웠다. 그러나 상담을 받아보니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했다. 상담을 위해 집으로 방문한 상담사는 다른 성인 회원이 진행 중인 학습지를 살짝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단계였다.
"이분도 덧셈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암산 능력을 키우려고 사칙연산 과정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정말 할 줄 모르셔서 처음부터 배우시는 분들도 많아요."
남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 건 부적절한 일이겠지만,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은 용기가 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마 내 사례도 다른 회원을 유치하기 위한 예시로 쓰이게 될 거라는 생각. 상상해보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전체의 3퍼센트가량을 틀렸다. 계속 하다 보니 오답률이 줄어들어 전체의 1퍼센트만을 틀리게 되었다. 계산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내가 수학을 못한다는 걸 아는 친구가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덧셈 진도를 마치고 뺄셈을 풀기 시작했을 때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나는 숫자를 거꾸로 세지 못했다. 세다 보면 몇까지 셌는지 잊어버려서 한두 개씩 숫자를 빠뜨렸고, 그런 착오는 계산 실수로 이어졌다. 나이가 서른인데 숫자를 거꾸로 세지 못한다니. 충격적이었지만 틈 나는 대로 시간을 투자하여 숫자 거꾸로 세기를 연습했다. 손가락을 접어 가며 숫자를 세면 덜 틀린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부끄럽지만 손으로 숫자를 헤아리며 계산했다.
숙제처럼 매일 하는 학습지 외에도 따로 문제집을 사서 미친 듯이 풀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일 때는 휴대폰으로 사칙연산 게임을 했고, 서술형 문제를 제공하는 앱으로 자기 전에 20분씩 공부했으며, 여러 방법으로 한 달간 5000개 이상의 문제와 씨름했다.
사칙연산을 전부 할 줄 알게 되기까지 10주가 걸렸다. 그로 인한 변화는 사소하면서도 강력했다.
이제 나는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굳이 확인해보지 않더라도 안다. 물건의 가격이 얼마나 싸고 얼마나 비싼지 예전보다 좀 더 명확하게 안다. 친구들과 만나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할 때 현재 주문해놓은 금액이 얼마인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계산이 된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금전 감각과 연산 능력을 키우겠다는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했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중학교 수학까지 마치는 게 처음의 목표였는데 이제는 고등학교 수학까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수학 공부를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