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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Dec 13. 2024

그 시절 우린 모두 다비치였고 버즈였지

노래방 없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내 청소년기의 팔할을 노래방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코인노래방이 없었다. '혼코노'보다는 룸에서 다같이 노래를 부르는 게 더 일반적이던 때였다.


그 시절 노래방 이용료는 한 시간에 10000원~15000원선이었다. 중학생에게는 큰돈이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 '학생 할인'을 해주는 노래방이 있어서 자주 갔다. 그곳의 요금은 한 시간에 5000원이었고, 늘 서비스를 한 시간씩 더 줬다.


나와 내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면 한 곡이라도 더 부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간주 점프, 점수 제거는 기본이고 템포를 올려 2배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허겁지겁 부르는 노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그때의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노래방은 마음껏 비명을 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물론 거기서 내가 정말로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때 내 노래들은 대부분 비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래하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고 나면 한바탕 울고 난 것처럼 개운해졌다.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면 풍기던 특유의 냄새를 기억한다. 레몬 향 같기도 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냄새가 늘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건 오직 노래방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어느 노래방에 가더라도 항상 똑같은 냄새가 났는데, 코인노래방에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아서 이젠 추억 속의 냄새가 되어버렸다.


마이크는 전부 유선이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커다랗게 '삐' 소리가 나면서 고막을 강타하기도 했다. 그래도 에코와 리버브가 무선 마이크보다 빵빵해서 노래할 맛이 났다.


노래방은 친구들의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이크만 잡으면 모두가 다비치였고, 버즈였다. 서로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를 감시하듯 지켜보며 '나대는' 아이를 곧바로 처단(?)하던 우리는, 노래방 안에서만큼은 솔직해졌다. 사실은 다들 나대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절절한 이별 발라드만을 불렀다. 사랑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밤 늦도록 술 마신다고, 담배 좀 그만 피우라고 잔소리하지 않을 테니 제발 돌아와 달라는 가사를 인상을 있는 대로 써 가면서 열창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사랑 노래보다도 이별 노래를 좋아했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애절하고 가슴 찢기는 이별을 누구나 원했다.


또 자주 부르던 노래가 있다. 슈퍼키드의 '어쩌라고'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전주 없이 노래가 바로 시작됐다. 가사는 이랬다. 어쩌라고 씨발 좆도, 어쩌라고 씨발 좆도, 어쩌라고 씨발 좆도 좆도 니미...


물론 그 노래는 단순히 욕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곡이 아니다. 어릴 땐 그냥 욕이 많이 나오는 게 재미있어서 부르던 노래였지만, 성인이 되고 다시 들어보니 훌륭한 이별 노래였다.


나는 여전히 노래방에 간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대부분 혼자 간다는 것이다. 코인노래방의 등장은 '노래방 솔플 시대'를 열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할 때, 혹은 그저 심심할 때에도 가볍게 가서 노래를 부르고 올 수 있다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하지만 혼자 가는 코인노래방은 내게 다소 '인스턴트 감정처리 기계'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노래방의 마법은 그 좁은 방 안에서 우리끼리만 공유하던 비밀스러운 용기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 서로의 어설픈 고음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삑사리가 나면 가볍게 웃어주면서, 노래를 통해 누구보다 솔직해지던 그 순간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레몬 향 가득했던 그 방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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