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피아니스트의 삶과 생각들
2022년 번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생애 첫 토크쇼(?)가 있었다. 몇 년 전에 즐겨봤던 '고전적 하루'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번에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초대하면서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 라는 제목의 일회성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 같았다.
나는 피아니스트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피아니스트로 한정하기보다는 어느 한 분야에서 최정상을 찍거나 엄청난 성과를 낸 사람들의 생각과 표정 그리고 말투, 어떤 질문에 대해 어떤 방식을 대답하는 지 등등을 '훔치'고 싶어한다.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내가 피아노를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 연주하기도 하는 만큼 피아니스트의 생각이 다른 분야보다 더 와닿는 느낌이다.
내가 임윤찬 피아니스트에 비할 바는 당연히 아니지만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받았던 스트레스를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나는 첫음이 가장 어려웠다. 그 적막을 깨고 첫음을 누르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야 된다는 사실이 나를 꽤 무겁게 짓눌렀다. 대단한 공연이 아니었음에도, 내가 느끼는 첫음의 부담감은 어떤 뮤지션의 말마따나 '연습 부족'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하루 7시간 넘게 피아노를 연습한다는 피아니스트도 첫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당연히! 그 부담감의 무게는 훨씬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더 의미있고 가치있겠지만, 적어도 연습 부족이 아니라 피아노를 대하는,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은 참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쉬워지기도 하고 어려워지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전적 하루라는 프로그램이 정기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던 시기, 진은숙 작곡가 편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진은숙 작곡가는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지만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보이자 바로 영상을 클릭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잠깐이나마 작곡과로 진학하기 위해 공부했다가 실패했었고, 그 기억을 안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인생을 살기 위한 목표도 모호하고 방법도 몰랐던 그 때, 그 프로그램에 나온 진은숙 작곡가가 직접 보여준 본인의 노트를 봤을 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인생의 방향을 잡아줬다라는 거창한 느낌보다는 어떤 실마리를 제공받은 느낌. 오선지도 아닌 평범한 양지사 노트같은 조그마한 수첩이었는데, 거기에 본인의 느낌을 글로 적고 그 밑 공간에 노트의 선을 오선지 삼아 아주 예쁘게 곡의 동기 몇마디를 그린 것이다. 자신의 작곡 원천이라고 진행자에게 신나게 보여주셨던 그 작곡가의 노트. 대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은 바로 메모이겠구나. 그 당시는 어렴풋이 느꼈고, 최근
읽었던 이윤규 변호사의 '몰입의 기술'에서 기록은 자기 뇌에 외장하드를 꽂는 것이랑 같다고 하는 구절을 읽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직장을 다니는 나는 때로는 몇일씩 연차를 붙여 휴가를 쓰고 아플 땐 하루쯤 쉬어도 내 위치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거기서 얻는 자괴감도 있지만 편안함도 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몸의 한 부분을 가지고 내는 Performance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은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항상 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쏟아야되는 삶을 살아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과 생각은 어떤 것일까.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아닐까.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면 일과 삶을 구분할 수 있지만 직업인이라고 생각하면 일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일이다. 직장인이 직업인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직업인으로 살아가려면 나는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