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이면 미역국과 삶은 달걀이 꼭 상에 올랐다. 특별한 생일날에 삶은 계란이 식탁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집안에서만 내려오는 가풍이었던 것 같다. 형제가 많은 탓에 똑같은 일상 속에 ‘나를 위하는 날’에 대한 특별함이 있었다. 생일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면 ‘나를 위한 날’에 대한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아 흡족했다.
7 식구가 살던 우리 집은 방은 세 개였다. 안방은 엄마와 아빠가 쓰고 작은 방은 큰언니 두 명이 썼다. 중간크기의 애매한 방은 셋째 언니와 넷째 언니 그리고 나까지 3명이 사용했다.
늘 공간에 대한 바람이 컸다. 학교 가서 외동인 친구가 자신의 방에서 책상에서 공부하고 본인의 침대에서 잠까지 쾌적하게 잔다는 것은 이웃 나라 얘기 같았다.
같은 방을 쓰는 언니들과 우리의 ‘개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학교 가면 자신만의 방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우리는 언제쯤 방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늘 나만의 구역을 갖고 싶었다.
집에는 전선을 연결할 때 쓰는 검정 테이프가 있었다. 어느 날 방 청소를 하고 우리는 바닥에도 붙었다 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검은색 테이프를 보고 소리쳤다.
“우리도 테이프로 각자의 구역을 만들자!”
나만의 방에 대한 바람이 깊던 우리는 방의 면적을 삼 분의 일로 나누고 그곳에 검은색 테이프를 바닥에 잘라서 붙였다.
이동이 편한 문 쪽 자리는 우리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셋째 언니가 갖게 됐고 난 방문과 제일 먼 끝 창가 자리에 자리가 정해졌다. 문 쪽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충만했다.
우리는 각자의 구역에서 누워있거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 공간은 비밀의 창문이 있다고 말했다.
각 방에는 검은색 테이프로 바닥에만 표시가 되어있었지만, 우리의 눈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비단옷처럼 본인의 공간에 문이 있다고 상상했다.
각자의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잠들 때면 넓은 이불을 펴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잠들었다.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었던 셋째 언니의 동화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니는 매일 다른 이야기들을 화수분처럼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 이야기에 넷째 언니와 나는 빠져들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우리는 각자의 구역이라고 나눠놓은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했다.
‘나의 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검은색 테이프로 각자의 영역을 표시한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다. 나만의 구역에서 놀았던 소꿉놀이의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년이 된 지금의 나도 방이 없다. 집에는 방이 세 개가 있는데, 큰아이 작은아이 한 명씩 방을 주면 우리 부부가 있는 침실 방이 남는다.
그마저도 커다란 침대가 있으니 작은 탁자를 놓을 공간이 마땅치가 않았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정신없이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렸을 적 그 시절처럼 나만의 공간을 꿈꾸던 날이 떠올랐다. 늦은 시간에도 편안한 자세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로 집에서 글을 쓸 때는 식탁을 사용하니 부엌은 늘 책과 노트로 헝클어져 있다.
그렇게 나의 공간이 없는 탓에 집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오늘은 깨끗하게 정돈해서 내 공간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