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망 Nov 29. 2024

김장의 기억

요즘은 절임 배추도 있어서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김장김치는 배추를 직접 사다가 고운 천일염으로 재웠다.

우리 집은 늘 100 포기의 김장을 했다.

시장 아저씨가 손수레에 배추와 다발 무의 재료를 빌라 앞까지 배달해 주면 우리는 커다란 배추 하나씩을 들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옮기곤 했다.

커다란 배추 한 포기의 크기가 두 손에 꽉 찼다. 그렇게 100 포기의 배추와 다발 무를 옮겼다.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거실은 배추로 채워졌다. 떨어진 배춧잎과 흙먼지 등이 집안에는 가득했다.


빨간색 대야에 무를 직접 썰고 강판에 곱게 채를 썰었다. 날카로운 칼을 쓰는 일들은 큰언니들이 했고 우리는 마늘을 까고 깐 마늘을 절구에 빻는 등 소소하게 준비할 그것들을 나눠서 하곤 했다. 지금에야 층간소음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옆집의 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혼자 집에 있는 날에 마늘 빻는 소리가 아랫집에서 들리면, '마늘을 빻아서 깍두기를 담그나?'라고 상상하곤 했다.

긴 통 안에 넣어둔 배추는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가 숨이 금세 죽었다. 이전보다 크기가 작아진 배추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김장 양념을 만들 때면 엄마는 시큰거리는 냄새 득한 젓갈을 가득 부어 담았다. 여러 가지 채소를 넣은 양념을 버무렸다. 곱게 채 썬 무가 점점 빨갛게 변해가는 건 가을바람에 낙엽이 붉게 물드는 것 같았다. 빨간 고춧가루 양념을 곱게 펴 바른 배추가 하나씩 쌓일 때면 이 많은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분주하게 준비한 100 포기의 김장은 우리 가족의 1년 치 양식으로 넉넉했다. 푹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 양념이 어우러지는 든든한 밥상을 보며 미소가 번졌다.

완성된 김치는 김장비닐에 차곡차곡 담았다.

우리는 배추를 넣은 비닐봉지를 들고 밖의 화단으로 나갔다.

빌라 뒤편 안 쓰는 화단의 땅을 깊게 파서 플라스틱 고무통을 넣었다. 지금까지 만든 비닐에 담은 김장김치를 차곡차곡 쌓았다. 생각해 보면 고무통은 김치냉장고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고무통에 넣은 김치는 일정한 공기로 양념이 고루 배어서 김치가 익어가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푹 익은 신김치 활용한 두부김치를 종종 먹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딸랑딸랑 종소리를 내는 두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면 엄마는 분주하게 지갑을 꺼냈다.     


“꼬망아 딸랑 두부 아저씨 오셨나 봐. 어서 가서 순두부 한 봉지링 두부 한모 사와.”     


엄마가 준 꼬깃꼬깃한 지폐를 들고 뛰어나가서 뜨끈한 두부를 양손 가득 사 들고 왔다. 두부로 손이 뜨겁게 얼얼해진 손을 발그레한 볼에다 녹였다.      

올해는 처음으로 혼자 김장을 하게 됐다. 작년까지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함께했지만 이번에는 단독으로 진행하려다 보니 준비할 것이 제법 많았다.


요즘은 혼자서 하는 김장 준비로 바쁘다. 고춧가루와 갖은 젓갈 등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것도 많은 손이 간다. 완성된 김치를 보면 든든해할 것을 생각하며 마음 편히 준비하려고 애쓴다.


어렸을 적 김치통 가득한 김치를 맛보며 넉넉해지는 마음처럼 우리 집 김치도 든든한 마음으로 채워지기를.


매콤한 김치 향이 가득한 분주했던 그때의 밥상이 그리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